[엽기조선왕조실록] 90. 조선시대 양반들은 절대 머리를 자르지 않았을까?


‘오두가단 차발불가단(吾頭可斷此髮不可斷)’이란 말…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구절이다. 단발령에 항의하는 최익현의 상소문 중 가장 유명한 대목이 아니던가? 이 구절과 함께 쌍으로 나오는 것이 효경의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구절이다. 이 말인즉슨 효도의 시작은 제 몸을 아끼는 것부터인데, 어찌 부모가 물려준 몸을 함부로 해한다는 것인가? 그러니 내 목을 칠 수는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절대 자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최익현의 상소문을 발췌해 국정교과서에 싣고, 이걸 배우던 그때 우리도 효도하기 위해 머리를 자를 수 없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국어선생님께 말하다 한대 맞았던 기억… 독자 여러분도 한번쯤 보거나, 듣거나, 행했을 것이다. 자, 이 대목에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그럼,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투를 틀기만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을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이 머리카락에 관한 이야기다.

“흐미 더운 거… 삼복도 다 지나갔는데, 뭔 날씨가 이리도 덥댜? 나사인지, 너트인지 하는 데서 100년 만에 더위가 온다고 설레발친 게 사실인가 봐.”

“울나라 기상청은 아니라고 하던디….”

“어이구… 그나저나 이노무 상투를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네. 날도 더워 죽겠구먼, 이게 무슨 짓이래? 우리가 무슨 로커도 아니고 말야… 머리를 이렇게 길으니 머리통이 완전히 압력밭솥이야. 홍진사, 너는 좋겠다. 머리가 대머리라… 얼마나 좋냐? 시원하겠다. 바람 잘 통하겠다. 나는 머리에 땀띠 나게 생겼어.”

“이 자식이… 너 인마 지금 가진 자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거냐? 누군 대머리고, 누군 머리카락 있다 이거지? 야, 이 자식아. 나는 머리 안 시원해도 좋거든? 머리에 땀띠가 나도 머리카락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100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 상투 튼 양반네들은 머리에 스팀 청소기를 하나씩 달고 사는 꼴이었다. 이런 더위에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대머리 아저씨들이었는데, 대머리들은 원래 주변머리를 가지런히 말아 올려서 정수리 부분에다가 상투를 틀었다. 이 때문에 여름에는 대머리가 더 유리했던 것인데,

“정 더우면, 어디 가서 탁족이나 하면서 지내던가.”

“지금 탁족이 문제야? 이 찌는 듯한 무더위에 머리통이 노랗게 익으려 하는데….”

여기까지만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이 부득불 상투머리를 고집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상투머리를 고집하긴 하였다. 문제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것인데,

“어이 박생원, 박씨 아저씨… 너 ‘패션조선 21’ 이번호 안 봤냐?”

“패션조선21? 넌 패션잡지도 보냐?”

“하, 이 자식 봐라… 사랑받는 현대 선비족이 되기 위해서는 인마 패션은 기본이야… 베이직, 스펠링 불러줘? 이번 여름 특집호에 여름 무더위를 이기는 ‘배코친 상투머리’가 나왔잖아! 나야 대머리… 아니, 머리숱이 적은 놈이라 상관없지만, 너처럼 머리숱 많은 놈은 꼭 봐야 하는 거잖아 인마!”

“배코 친다고? 배코가 뭐야? 배에 코가 달렸어?”

“이 자식이 패션 트렌드에 대해선 아예 꽝이구먼? 올여름 최고 유행하는 지단 스타일 머리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지단도 불란서 국내에 복귀한 마당에, 네가 지금 지단 스타일 배코 상투를 모르면 그게 말이 되냐?”

“야이 자식아 좀 알아 드시기 쉽게 씹어서 이야기 해주면 안 되냐? 패션잡지 하나 보고 되게 생색이야.”

“하, 너 그럼 지금까지 진짜 오리지널 상투를 하고 다닌 거였어? 얼씨구 진짜네? 진짜 상투네?”

“상투에 진짜 상투가 있고, 가짜 상투가 있냐?”

“야 인마, 보통 뚜껑 까고 상투 틀잖아! 속알머리 박박 밀어내고…그게 배코 치는 거잖아! 그런 다음에 주변머리 돌려서 상투를 트는 거잖아.”

“… 진짜냐?”

“너, 바보 아냐? 이 더위에 그럼 쌩으로 상투를 그대로 트냐? 괜히 지단이 속알머리 없는 머리로 돌아다니는 지 아냐? 다 그게 깊은 뜻이 있는 거야 인마.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다들 속알머리는 파고, 주변머리 올려서 상투 틀었을 거다!”

조선시대 말 최익현의 상소를 보면, 마치 털끝 하나 손을 안 대고 그대로 상투를 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상투를 틀 때 수박화채를 만들 듯 속알머리를 파고, 주변머리를 말아 올려 상투를 틀곤 하였다. 이를 두고 흔히들 ‘배코 친다’라고 하는데, 이게 구전되어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면도하듯이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을 ‘배코 친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 시점으론 조선시대 상투 하면 으레 사극에서 봉두난발(蓬頭亂髮)로 풀어헤친 죄인들의 장발머리를 떠올리곤 하는데, 실제로 조선시대 사람들… 속알머리는 다 밀어버리고 다녔던 것이다. 언뜻 잘 매치가 안되는 그림이지만, 우리네 조상들이 그렇게 꽉 막힌 삶을 살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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