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조선왕조실록] 165. 아버지와 겸상을 하지 말라!

얼마 전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의 어머니로 나왔던 원로배우 정애란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전해져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국민 할머니’로 온 국민의 가슴에 훈훈한 온기를 전해주시던 정애란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에…정애란 선생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전원일기’의 기억을 한번 반추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다. ‘전원일기’에서 양촌리 김회장님댁의 식사시간 풍경을 보면, 최불암씨와 정애란씨가 겸상을 하고, 그 다음에 아들끼리(김용건, 유인촌)의 상, 그 다음이 며느리끼리의 상이 놓여져 있다. 어째서일까? 이들은 어째서 전부 각각의 상을 받는 것일까? 내림차순일까? 의문이 들지 않는가? 어째서 김회장과 그의 아들들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지 않은 것일까? 정애란 선생님 때문일까? 이번회 주제는 바로 이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저…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황해도에서…황해도에서….”

“뭔데? 황해도에서 뭐? 쪽바리 놈들이 황해도도 지네 땅이래?”

“그…그게 아니라, 아들이 밥먹다 말고….”

“밥 먹다 말고 뭐? 채했데? 아니면 식중독? 뭔데? 빨랑 말 안해? 이 자식이 지금 누구 성격테스트 하나?”

“그…그것이 아들이…밥먹다 말고 아버지를 밥그릇으로 때려 죽였답니다.”

“리얼리? 진짜야? 사실이야?”

“네, 지금 황해도 관찰사가 보내온 따끈따끈한 뉴스입니다.”

“허, 이거 참…. 어쩌다 이런일이….”

조선이란 나라의 기본 컨셉이 유교란 것은 수차에 걸쳐 설명 드렸을 것이다. 이런 조선에서 최고로 악질인 범죄가 두가지 있었으니, 하나가 대역죄(大逆罪 : 반란)이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강상죄(綱常罪)였다. 대역죄야 설명을 안해드려도 다들 아실터이니 넘어간다 치고, 이 강상죄란 것이 좀 골치 아픈데, 한마디로 말해서 삼강오륜을 저버린 반인륜적 범죄란 것이다. 이런 강상죄의 범위로는, 자기의 부모를 죽이거나, 남편을 죽이거나, 노비로 주인을 죽이거나, 관노로 관장을 죽이는 경우인데, 일단 이 강상죄가 터지면 죄를 지은 범인은 무조건 사형이었고, 범인의 처자는 관노로 끌려갔다. 덤으로 범인의 집은 싹 밀어버리고, 그 집터에 연못을 팠다. 아울러 범인이 살던 고을은 행정상으로 강등된다.(시가 군이 되고, 군이 면이 된다 생각하시면 된다) 그리고, 강상죄가 일어난 곳의 수령은 백성들을 교화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면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강상죄는 유교를 컨셉으로 잡은 조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나라의 국기문란 행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황해도 관찰사 이눔시키…그냥 날로 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당장 아버지 죽인 그놈은 목을 잘라 버리고, 황해도 관찰사 이눔시키 압송해 와!”

“그…그런데 전하, 문제가 좀 있는데요.”

“뭔데?”

“그 뭐시기냐…, 이동(李同 : 범인의 이름)이란 놈에게도 정상참작할 만한 껀덕지가 있어서….”

“지 아버지를 때려죽였는데, 무슨 정상참작!”

“아니 거시기…이동 아버지가 아들이랑 같이 겸상을 했답니다.”

“뭐? 그게 진짜야? 사실이야?”

“…예”

“하, 그 자식…걔네 아빠도 꼴통이구만? 뭐 좋은일 보겠다고 아들이랑 겸상을 했대?”

“그러게 말입니다.”

“허 이거 참….”

“거시기, 정상참작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참…아버지랑 같이 겸상해서 밥을 먹었다면…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데…이거 참…”

갑자기 돌변한 왕의 태도, 어째서일까?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불문율적인 철칙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와 아들은 절대 같은 상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아들과 아버지란 존재는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존재, 오죽하면 전생에 원수지간이 현세에서 부자지간으로 만난다는 말이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안고 태어난 부자지간의 경우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더구나 밥상머리에서는…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식사시간’에 대한 철학을 지닌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밥먹을 때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앉아 있으면, 아들이 밥먹는 걸 가지고 아버지가 구박을 하거나 트집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미쳤던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조선시대 아들과 아버지는 절대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굳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뭐, 그놈도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미련하고 못 배워서 그런 걸 거야. 대충 정상참작해서 형을 좀 낮춰줘라.”

중종 때 벌어졌던 ‘이동(李同)의 아버지 살해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던 것이다. 딱 보면 알겠지만, 조선시대 최고의 범죄인 강상죄를 적용함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겸상은 정상참작의 대상이 될 정도로 ‘중대한 행위’였던 것이다. 요즘 들어 4인용 식탁에 앉아 밥 먹다 말고, 아버지가 자식들을 훈계하는 모습들…심심찮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다른 말 하지 않겠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를 때려죽인 아들도 정상참작이 되었던 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겸상이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하시길 빌 뿐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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