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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때!] 마산 ‘저도연륙교’사랑은···손잡고 한세상 건너는 것

만산홍엽으로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마음은 허전하고 옆구리도 시려온다. 풍요로운 가을 정취를 함께 만끽할 ‘임’ 때문일까. 겨울이 오기 전 사랑의 결실을 맺어볼 요량이라면 경남 마산을 찾는 것도 괜찮겠다.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猪島)를 연결하는 저도연륙교. 사랑의 연을 맺어준다는 주홍빛 철교다. 섬과 연결된 다리다 보니 그 아래는 남해의 청정해역. 주변은 온통 단풍으로 불타올라 한결 운치가 돋보인다. 해질녘, 붉은 노을이 다리를 감싸 안기라도 하면 가슴이 저며와 혼자 걸으면 열불나고 둘이 걸으면 눈맞는다.

마산시내를 빠져나와 백령재를 지나 반동에서부터 연륙교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이름난 드라이브코스. 백령재 정상, 허름한 찻집에 들러 가을향을 머금은 국화차 한 잔을 마시고 연륙교로 향했다.

해안선 풍광에 젖어들 무렵,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치자 푸른 바다 위에 주홍빛 아치형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20년 전 바다로 인해 고립된 섬을 육지로 만들어준 저도연륙교다. 170m의 길이에 폭 3m, 높이는 13.5m. 태국 깐짜나부리의 콰이강의 다리를 닮았다 해서 일명 ‘콰이강의 다리’로 불린다.

5년 전 영화 ‘인디언 썸머’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신영(이미연)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변호사 서준화(박신양)와 이곳에서 이틀을 보낸다. 가수 거미의 뮤직비디오 ‘아직도’의 배경도 이곳이다. 유명세를 탄 까닭일까. 해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연간 20만여명.

연륙교의 진면목은 다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조용한 산골 풍치와 유유히 흐르는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점점이 떠 있는 쇠섬, 암목섬, 자라섬 등의 낭만적인 풍경이 연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크고 작은 산에 둘러싸인 다리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그 아래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남해의 바닷물이 흐르니 선계에 와 있는 듯 한동안 정신이 몽롱해진다.

하지만 연륙교가 생기기 전 상황은 크게 다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섬사람들은 고립과 단절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늘 육지와의 교류를 갈망했건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육지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배편이 전부였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다. 섬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행하는 통통배에 몸을 실어 뭍으로 향했다. 이후 취학통지서를 받은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통학선이 생겼고, 뭍으로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래도 허전함은 늘 남아 있었다. 육지로 떠난 임에 대한 그리움일까.

다리는 사연을 품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뤄지고, 중간에 손을 놓으면 헤어지게 된단다. 또 다리 위에서 빨간 장미 100송이를 건네주며 프러포즈하면 사랑이 맺어진다고 연인들은 믿고 있다.

연륙교가 들어선 후 섬사람들의 생활패턴은 달라졌다. 육지와의 교통이 수월해진 것은 물론 농수산물의 유통도 활발해졌고,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아 섬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섬사람들에게 연륙교는 삶의 통로다.

하지만 다리는 고달프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연륙교는 안전상의 문제로 승용차와 1.5t 이하, 높이 2m 이하 차량만 건널 수 있도록 제한됐다. 이후 2004년 신저도연륙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인도교로 남아 있다.

마산9경 중 하나로 꼽히는 새 다리는 괭이갈매기를 형상화했다. 길이 182m, 폭 13m의 왕복 2차로 도로가 새로 뚫린 셈. 다리는 야간에 더욱 빛을 발한다. 광케이블 조명시설을 설치해 시간별·계절별로 모습을 달리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다리조명은 밤낚시에도 도움을 준다. 다리 아래로 일렁이는 불빛을 보고 고기들이 모여들기 때문. 조명은 해질녘부터 일출 때까지 불을 밝혀 늦은 시간에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리 건너 저도는 섬 모양이 돼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 시골 어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섬 가운데는 용두산(해발 200m)이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 서면 발 아래로 남해안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섬 한바퀴를 돌아 나오니 어느새 용두산이 해를 삼켰다. 다리를 향한 연인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부산에서 애인과 함께 왔다는 서영희씨(26)는 다리를 건너기 전 남자친구에게 손을 놓지 말 것을 다짐받은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산과 바다, 다리가 마치 한 몸인 듯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구복리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마산|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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