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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래의 꿈으로 본 역사] 〈19〉 고려 건국 이야기

안정복의 ‘동사강목’의 괴설변증에 나오는 이야기로 살펴본다.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에 이렇게 되어 있다. ‘호경’이라고 하는 사람이 자칭 성골장군이라 하고, 백두산으로부터 부소산에 이르러 장가를 들어 살고 있었다. 뒤에 평나산신과 부부가 되어 숨어 살았다.

호경이 옛 처를 잊지 못하여 밤마다 꿈처럼 와서 교합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강충(康忠)이다. 강충이 두 아들을 낳아 막내아들을 ‘보육’이라 했는데, 그는 일찍이 곡령에 올라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었더니, 삼한의 산천이 은빛 바다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그의 형 이제건에게 말했더니 이제건이, “너는 큰 인물을 낳으리라” 하고 그의 딸 덕주를 아내로 삼아 뒤에 두 딸을 낳았다.

막내딸을 ‘진의’라 했는데, 아름답고 재주가 많았다. 나이 겨우 15세 때 그의 언니가 오관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오줌이 흘러 천하에 넘치는 꿈을 꾸었다. 깨어서 진의에게 이야기했더니, 진의는 비단 치마로 그 꿈을 사자고 하였다. 언니는 진의의 청을 허락하였다. 진의는 언니에게 다시 꿈 이야기를 하라 하고, 이것을 잡는 시늉을 하며 세번 품에 안으니, 이윽고 몸이 무엇을 얻은 것처럼 움찍거리고 마음이 자못 든든해졌다.

마침 당나라 숙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산천을 편력하다가 송악군에 이르러 보육의 집에 기숙하면서 그의 두 딸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터진 옷을 꿰매 달라고 청하니, 보육은 중화의 귀인임을 알아차리고 마음으로 과연 술사의 말과 부합된다고 생각하여, 곧 언니로 그 명에 따르게 하였으나, 문턱을 넘다가 코피를 흘리며 나오므로, 동생인 진의가 대신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한달 동안 머물다가 그녀가 임신하였음을 알고 작별할 때 “나는 대당(大唐)의 귀존이다” 하고, 활을 주며 “아들을 낳거든 이것을 주라”고 하였는데, 과연 아들을 낳아 작제건(作帝建)이라 하였다.

작제건은 서해 용녀(龍女)에게 장가 들어, 아들 넷을 낳았는데 장남을 용건이라 하였다가 뒤에 융(隆)으로 고쳤다. 나중에 세조로 추증되었다. 그는 일찍이 꿈에 한 미인을 보고 배필이 되기를 약속하였는데, 뒤에 송악에서 영안성으로 가다가 길에서 한 여인을 만나니, 그 용모가 꿈에 약속한 여인과 같으므로 드디어 혼인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온 곳을 알지 못하므로, 세상에서는 그 이름을 몽부인이라 하였으며, 혹은 그녀가 삼한의 어머니가 됐으므로 드디어 한씨라 했는데, 이가 곧 위숙왕후다.

유형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일은 족히 논할 것이 없으나, 고려조에 이르러는 볼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허황함을 면치 못한다. 어찌 왕실을 추숭함에 대해 전설의 문란함이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고려조의 군신이 무턱대고 조상을 위조하여 중국의 기롱을 받기까지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이유를 따진다면 대개 사람들의 마음이 무지한데다가 불에 아첨하는 습속이 있어 그런 것이다. <안정복, ‘동사강목’ 괴설변증>

먼저 고려 태조 왕건의 가계와 관련된 꿈이야기를 알기 쉽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강충→보육→딸 진의가 언니로부터 꿈을 산 후 당나라 귀인과 인연을 맺어 작제건을 낳게 됨→작제건은 용왕의 부탁으로 늙은 여우를 쏘아죽인 후 용녀를 얻게 되어 혼인해 용건을 낳게 되며 의조로 추증됨→용건은 나중에 이름을 융으로 고쳤으며, 꿈속에서 만난 여인을 길에서 만나 인연을 맺어 왕건을 낳게 되고 세조로 추증됨→태조 왕건으로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김관의의 편년통록에는 진의가 인연을 맺은 사람이 당나라의 황족으로 당 숙종으로 나오고 있으나, 숙종은 한번도 멀리 나간 적이 없다고 하기에, 민지(閔漬)의 편년강목에는 선종의 일로 나오고 있다.

유형원은 ‘고려조의 군신이 무턱대고 조상을 위조하여 중국의 기롱을 받기까지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신성시하기 위하여 후세 사람들이 억지로 끌어다가 거짓으로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짓고 있다.

지어낸 거짓 꿈이야기가 있음을 언급하였지만, 민중의 꿈에 대한 신성성을 이용하여 이렇게 왕건의 가계가 중국의 황족으로부터 연원되었다는 것을 부여하여, 고려 건국에 있어 민심안정 및 수습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아울러 ‘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의 문희·보희의 매몽 설화 및 신라의 거타지 설화가 그대로 원용되어, 진의와 작제건의 인물을 신성시하고 하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고려 건국에 있어 보육의 딸 진의가 당의 귀인과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의 꿈이야기, 작제건이 용왕의 부탁으로 늙은 여우를 죽인 후 삼한 땅의 임금이 될 것을 계시받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서로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용건이 꿈속에서 만난 여인과 인연을 맺어 왕건을 낳게 되었다는 꿈이야기를 통해 왕건의 출생에 있어 천명에 의한 신성성을 부여하여 고려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한 용을 쏘아죽이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계시받는 꿈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조선조 개국의 설화에서도 보여지고 있는 바, 민중의 꿈에 대한 신성성을 이용하여 창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 꿈인 것이다.

*필자:춘천기계공고 국어교사, 한라대 강사, 꿈해몽전문가, 문학박사(단국대 한문학) ‘파자이야기’, ‘꿈해몽백과(공저)’ 등 8권이 있으며, ‘홍순래박사 꿈해몽’(https://984.co.kr, 984+접속버튼)의 유·무선 사이트를 통해 꿈에 대한 연구와 정리를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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