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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덫’ 뺨치는 ‘경찰의 덫’…경찰-정보원, 여자까지 붙여주며 함정수사

‘경찰이 기막혀.’

조폭보다 더 지독한 경찰의 ‘마수’에 걸려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시민이 법의 도움을 받아 밝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28일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경찰의 정보원이 건네준 20만원으로 히로뽕 0.24g을 구입해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기소된 김모씨(33)에 대해 공소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지난 2002년 히로뽕을 투약했다가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마약 전과자다. 하지만 그는 출소한 뒤에는 마음을 다잡고 딸을 키우기 위해 야채행상을 하며 나름대로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알고 지냈던 임모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임씨는 김씨에게 “히로뽕을 사라”고 권유했다. 김씨가 싫다고 해도 임씨는 1주일 동안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마약을 사도록 유혹했다.

김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돈까지 건네주며 마약을 사라고 꾀었고, 휴대전화 요금까지 대신 내주면서 김씨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심지어 여자까지 붙여주었다.

김씨는 결국 임씨의 꾐에 빠져 임씨가 건네준 돈으로 히로뽕을 산 뒤 임씨가 붙여준 여자와 함께 여관방에 투숙해 이를 투약하다 경찰에 검거됐다.

그러나 김씨를 마약범죄의 수렁으로 밀어넣은 임씨의 뒤에는 경찰이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지인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임씨에게 경찰이 “마약사범 검거에 협력하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임씨는 연락이 되는 마약 전과자를 찾다가 김씨를 떠올렸던 것. 결국 김씨는 ‘경찰 실적 올리기’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임씨가 김씨에게 건넨 히로뽕 구입비와 휴대전화 요금은 경찰이 임씨에게 준 ‘공작금’ 50만원의 일부였다. 김씨에게 여자를 붙인 임씨의 작전도 실제는 경찰이 훈수한 것이었다.

경찰의 덫에 걸린 김씨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함정수사’이므로 기소 자체가 무효라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은 “이 사건은 범죄의사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적극 유도한 뒤 그 범죄를 문제삼아 기소한 것으로, 기소 절차가 법률에 어긋나 무효”라고 판결했다. 형사소송법상 기소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해 무효인 때에는 공소기각 선고를 하도록 돼 있다.

이어 대법원도 이날 “피고인이 당초 히로뽕을 투약할 생각이 없었는데, 경찰관의 지시를 받은 임씨가 집요하게 히로뽕을 사 달라고 요청하고 구입대금도 경찰관이 마련한 사실 등이 인정된다”며 “경찰과 임씨가 공모한 ‘계략에 의한 함정수사’로 유발된 범죄인 만큼 기소를 무효화한 원심 판단은 옳다”고 밝혔다.

〈엄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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