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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파일]눈 대용 소금 300가마, 김장때 ‘재활용’

8월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최근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이 개봉됐고, ‘메리 크리스마스’ 등이 상영을 앞두고 있다. 한국영화 가운데 크리스마스 전후로 개봉된 영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등이다.

- 한여름 촬영탓 나뭇잎 제거 진땀 -

# “잎을 모두 떼는 수밖에….”

크리스마스는 거리의 트리에서 시작된다. 2003년 12월17일에 개봉된 차태현·김선아 주연의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감독 이건동)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는 대형 트리가 나온다.

이 영화는 한여름에 찍었다. 여러 가지 여건상 한겨울까지 기다릴 수 없는 데에다 촬영을 눈오는 날에 맞춰 하는 게 용이하지 않고, 극중 분위기에 맞게 눈이 온다는 보장도 없어 한여름에 촬영을 강행했다.

촬영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거리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것도 관건 가운데 하나였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20일에 걸쳐 대전시의 협조를 받아 유성구 봉명동 온천거리에 11m 높이의 화려한 대형 트리를 세웠다. 그런데 이 트리 주변의 나무들이 문제가 됐다. 겨울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잎이 무성했던 것이다.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카메라 앵글을 아무리 조정해도 불가능. 방법은 잎을 모두 떼내는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은 이를 위해 나무병원에 조언을 구했다. 잎을 모두 제거하더라도 나중에 생육증진제 등 수관주사를 놔주면 나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는 소견을 듣고 유성구의 승인을 받아냈다. 카메라 앵글에 걸리는 5그루 나무의 입을 모두 일일이 떼어낸 뒤 촬영을 마쳤다. 현장 주변 팻말에 연유를 고지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혀를 차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눈(雪)과의 전쟁을 벌였다. 튀긴 쌀가루를 강설기로 날리고 15㎏짜리 400포대 분량의 식용 소금을 사용해 눈 효과를 냈다. 고드름, 눈사람 등도 만들어 사용했다. 고드름은 특수 실리콘으로 만든 뒤 접착제로 일일이 붙였고 눈사람은 스티로폼 등으로 만들었다. 재래시장에서 연탄을 긴급 공수, 모두 화로로 태워 거리의 소품으로 비치해 겨울 분위기를 자아냈다.

- 주민 차고 개조해 사진관으로 써 -

#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아”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8년 1월24일에 개봉,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청룡영화상 대상·여우주연상·촬영상 등을 수상했고,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았다. 일본의 한 극장에서는 무려 1년 동안 상영됐다. 그러나 제작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허진호 감독이 지은 원 제목은 황동규씨의 시에서 따온 ‘즐거운 편지’였다. 제작자 차승재씨(싸이더스FNH 대표)의 제안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가 됐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외면, 일신창업투자로부터 제작비를 받았다. 남녀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렸다. 1순위는 한석규·심은하. 한석규는 ‘쉬리’ 제작이 지연되면서, 심은하는 제작진이 김현주와 최강희를 만나고 온 날 연락을 줘 가까스로 원안대로 촬영할 수 있었다.

촬영은 9월부터 12월 초까지 했다. 서울과 이리의 화장터 등 일부 장면을 빼고 모두 군산에서 찍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눈이 내린 장면은 운좋게 보충 촬영 때 찍었다. 군산에 40년 만에 폭설이 내린 것이다. 제작진은 “하늘이 도와준다고 기뻐했는데 훗날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A프린트 작업을 마친 뒤 작고하셨다”고 토로했다. 정원의 사진관은 한 주민의 차고를 개조한 것이다. 한달 동안 만나주지도 않던 주인은 윤상오 싸이더스FNH 수석 PD가 보낸 장문의 편지에 감복, 원상 복원을 조건으로 개조를 승낙했다. 정원의 사진관 앞에 내린 눈은 소금 300가마와 솜 200가마로 만든 것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동네 주민들이 그해 김장은 촬영 때 쓴 소금으로 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 제작일정 빠듯해 제작진 발동동 -

# “제목이 아킬레스건일 줄이야”

1998년 12월19일에 개봉된 김현주·박용하 주연의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은 장동홍 감독이 연출했다. 독립영화 화제작 ‘오! 꿈의 나라’(1989) ‘파업전야’(1990) 등을 동료들과 공동연출했던 장감독이 전작들과는 판이한 멜로영화를 내놔 주목을 끌었다. 이 영화는 훗날 ‘R-포인트’ 등을 선보인 공수창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장감독은 공감독의 제안으로 연출을 맡았다. 장감독과 공감독은 독립영화 ‘파업전야’에서 연출·각본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영화는 가을~초겨울에 찍었다. 제목·내용·영상 등을 등을 감안, 크리스마스 전에 개봉하기로 해 제작일정이 빠듯했다. 미술·후반작업 등을 감독의 바람대로 충분히 할 수 없었다. 나뭇잎을 떼내고 소금·강설기 등을 이용해 크리스마스 시즌 효과를 냈지만 아쉬움이 많았다. ‘올해 최고의 영화, 별점을 10개라도 주고 싶다’ ‘어제는 장산곶의 매, 오늘은 팬시점의 참새’ 등 평론가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한편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2003)는 일본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각색, 영상화했다. 윤태용 감독의 ‘소년, 천국에 가다’는 33살로 환생한 뒤 하루에 1살씩 먹어 93살이 되는 해 크리스마스 때 천국에 가는 13세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역설했다.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엔터테인먼트가 싸이더스FNH 등과 공동제작했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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