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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광석에게 띄우는 편지…사람들은 당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1990년에 결혼한 김광석은 딸 서우에게 유독 애정이 많았다. 콘서트가 없는 날이면 언제나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 그는 ‘착한’ 아빠였다.

광석씨, 오랜만입니다. 12년 전이네요. 대학로 학전소극장 좁디좁은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진 것이…. 그때 나는 1000회 공연에 즈음하여 당신을 인터뷰하러 갔었죠.

“2000회까지는 소극장 공연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이 작은 공간 속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노래할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껴요. 공연 끝나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갖는 술자리도 큰 매력이죠.”

그날 열정적으로 얘기하던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수들이 여의도와 밤무대를 오가면서 단일앨범 100만장 시대를 구가하던 그때, 대학로 소극장을 지키면서 음악을 하겠다는 광석씨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면 과장일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거짓말처럼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죠. 2000회 약속은 어떻게 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던 매력적인 목소리와 미소는 어떻게 하고…. 당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한동안 미스터리를 풀겠다고 뛰어다닌 기억도 새롭습니다. 대학로의 라이브극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노래 대신 개그무대가 점령해가는 걸 보면서 당신을, 광석씨를 원망하기도 했죠.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당신을 추모하는 공연이 열렸습니다. 광석씨가 평소 좋아하던 민기 형(김민기 학전 대표)이 주선했다죠. 기타를 든 당신의 모습이 새겨진 브론즈 부조도 소극장 앞마당에 들어섰네요.

떠난 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당신을 떠나보내지 못한 듯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밤늦은 퇴근시간 차창에 기대면 당신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속삭이죠. 힘들고 지칠 때면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거야’라고 외치고, 푸른 제복을 만나면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이라고 노래합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인터넷을 열어 광석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래하는 장면을 보곤 한답니다.

광석씨.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익숙해지는게 안타깝다고 했지요. 그대 떠난 자리에서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빨리 변해가고, 너무 쉽게 변해 왔는지 모릅니다. 그때 뜨거운 젊음을 함께했던 당신의 친구들도 희끗희끗 새치가 돋고, 적당히 배가 나와서 치열했던 꿈을 잊은 채 안락한 소파 위에서 낄낄거리며 TV오락프로그램을 봅니다. 이도저도 시큰둥해진 메마른 가슴속엔, 자식걱정과 돈걱정으로 가득합니다.

광석씨. 환갑이 되면 뭣하고 싶으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연애하고 싶다고 했다죠. 환갑의 로맨스를 꿈꾸던 당신, 걱정하지 마세요. 그 나이가 돼도 당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테니까요. 오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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