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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꽃뱀 삐끼女…일탈 꿈꾸는 당신의 지갑 노린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아지랑이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계절이다. ‘얄미운 나비’가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파고든다. 속칭 삐끼녀다. 방황하는, 혹은 은밀한 일탈을 꿈꾸는 남성을 유혹해 술값 바가지를 씌우는 강력범죄의 주연급이다. 그 교묘한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그 사기 행각의 실태와 대책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 사건의 재구성 1

남자를 유혹해 술값 바가지를 씌우는 사기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모르는 여성과 은밀한 데이트를 하는데 대한 기대감과 성욕, 호기심 등이 크면 클수록 이런 얄궂은 범죄에 걸려들기 쉽다. 술집과 유흥업소가 즐비한 서울 은평구의 한 밤거리에 번쩍이는 네온사인은 인간의 욕망과 갈망을 파노라마처럼 비춰주고 있다. 화려한 도시의 어디에선가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삐끼녀’의 붉은 날갯짓 같기도 하다.(자료사진은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함) |김기남기자

40대 중반의 자영업자 강모씨는 얼마 전 서울 은평구 K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삐끼녀에게 걸려들어 술값 바가지를 호되게 썼다. 친구와 1차를 하고, 밤 11시쯤 2차로 나이트에 들어가 둘이서 맥주를 마시며 웨이터가 건성으로 엮어준 부킹녀들에게 연속 퇴짜를 맞던 와중에 외모가 괜찮은 여성 2명과 어찌어찌 하다보니 합석이 이뤄졌다. 이 여자들은 먼저 왔던 부킹녀들과는 달리 매우 호의적으로 나왔다.

같이 '러브샷' 등을 하며 기분이 좋아진 강씨에게 여자들은 2차를 가자고 권했다. '오늘 안 들어가도 된다'는 말도 은근히 하며 양주 한잔 사달라고 하는 파트너의 귀엣말에 선뜻 따라가려는 강씨를 친구가 만류했으나 강씨는 결국 친구를 먼저 보내고 그 여자들을 따라갔다. 한 여자는 조금만 있다가 분위기만 잡아주고 가겠다고 해서 더욱 마음이 쏠린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홍제동 인근의 카페풍의 지하 술집으로 가서 양주 2병을 시켰는데, 여자가 시킨 술 이름이 다소 생소했으나 '비싸야 얼마나 비싸겠느냐'고 가격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작은병 한병을 금방 비우고 또 한병을 시키고 한 여자는 일어섰고, 강씨와 둘이 남은 여자는 취한 척을 하며 술을 계속 마시자고 했다. 계속적인 원샷에 술병이 바닥날 즈음 그 여자는 또 한병을 주문했고, 강씨는 그만 마시자고 하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태도가 돌변한 여자는 갑자기 핸드백을 집어 들고 가겠다고 했고, 강씨도 기분이 나빠지고 술도 많이 취해 술집을 일어섰다. 여자는 한발 앞서 나가고 계산대에 와서 술값을 물어보니 무려 48만원이 나왔다. 많아야 20여만원을 예상한 강씨가 따지자 주인은 술이 병당 21만원이고, 나머지는 안주 2개 가격이라며 메뉴판을 보여줬다. 강씨는 아차 싶었지만 낮선 술집에서 문제가 생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결제를 하고 여전히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술집 계단을 올라왔으나 여자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닭 쫓던 개 신세를 생각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강씨의 속이 너무도 쓰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 사건의 재구성 2

50대 초반의 직장인 이모씨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남자 후배와 술을 마시다 전에 알고 지내던 영업직 여성과 통화가 되어 그녀를 불렀다. 2대 1로 술을 마시다 짝을 맞추자고 하자 그녀가 자신의 여자친구(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밀착을 하며 친구가 근무하는 집에 가서 넷이 한잔 더 하자고 했다.

심야에 일행이 도착한 곳은 신천동 인근의 카페식 단란주점. 처음에는 친구와 넷이 짝을 이뤄 노래를 부르면서 블루스도 추는 등 분위기가 고조돼 양주를 계속시켰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술을 더 이상 시키지 않자 친구는 뻔찔나게 자리를 비우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더 놀고 싶으면 술을 더 시키라는 눈치를 줬다. 그제야 '오늘밤이 물건너갔구나…' 느낀 이씨와 후배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고, 술값으로 100만원 가까이를 지불해야 했다. 기분에 휩쓸려 열일곱살짜리(17년산) 양주를 마신 것이다.
 

# 사건의 재구성 3

위의 두 사건은 삐끼녀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남자들은 헛물만 켜고 술값만 뒤집어쓴 대표적이 사례들이다. 이런 유형의 바가지는 그 불법성을 따지기가 애매모호해 남자들이 수시로 걸려드는 아이템이다. 몸망치고 돈버리고, 나아가 심신의 굴욕에 빠지는, 허리 정도까지만 빠져드는 술값 바가지의 수렁이다.

그러나 다음의 사건은 경찰에 의해 일당이 체포된 매우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로서, '삐끼녀 종합선물세트'를 연상케 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 강력계에 한가지 제보가 들어왔다. 일산 시내에 무허가 유흥업소를 차려놓고 남자들을 유인해 가짜 양주를 판매하며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는 신고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모두 9명(남3명, 여6명)으로 20대 미혼여성 6명이 삐끼녀로 활동하면서 어수룩한 남자들의 지갑을 후리다 결국 꼬리를 밟힌 최신 술값바가지 수법이다. 여자들은 한 두번 바가지를 씌우는 정도가 아니라 꾸준한 만남을 유지하면서 남자들을 등쳤다. 일반음식점 업소허가를 내놓고 1병당 5000원 정도면 구입하는 가정용 싸구려 양주(00큐)에 우롱차를 섞어 만든 가짜 양주를 밸런타인 17년산이라고 속여 35만원을 받는 등 가짜양주까지 직접 조제해 불법영업을 했다.

일당은 이같은 방법으로 올해 1월부터 최근까지 불과 2개월여 동안 90여명으로부터 1억원을 챙겼으며 술 맛이 이상하다고 항의할 경우 폭력을 휘둘러 신용카드를 빼앗은 뒤 현금인출기 앞으로 끌고가 돈을 인출해 가로챘다고 경찰은 밝혔다. 조사결과 이들은 여종업원을 시켜 인터넷 채팅으로 손님을 업소로 유인해 가짜 양주를 팔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여종업원들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술 한잔 하자'며 남성들을 유인해 유흥업소로 데리고 온 뒤 신분을 속이고 남성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삐끼녀를 고용해 무허가 불법영업을 하며 가짜양주까지 판매한 남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인터넷 채팅으로 남성들을 유인해 가짜 양주를 마시도록 여종업원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 왜 삐끼녀에게 걸려들까?

모르는 여자 손목 한번 잡아보려다 결국 군침만 흘리고, 가짜양주 술값 바가지 쓰고 속쓰려하며 후회한 적이 있나요? 남자들은 단물만 빨아먹고 나비처럼 날아가는 삐끼녀에게 어째서 잘 넘어갈까. 정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삐끼녀인 줄 의심하면서도 걸려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여체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어서일까?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하는데….

삐끼녀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가 '채팅-부킹(혹은 현장부킹)-술집-술값바가지'의 순환고리에서 일당들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고, 경계심을 늦추는 나름대로 완벽한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삐끼녀에게 걸려드는 큰 요인은 피해자 스스로 원인 인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성욕과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호기심 등이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신경정신과 조성훈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精)이 억압받다가 여자 호객꾼이 일시적으로나마 정을 살려주었기 때문이지만 남성들의 사랑하고 싶은 관계 욕구에서 비롯된다"면서 "여자가 욕구들을 가식적으로나마 충족해주면 신체를 지배하는 정(精)이 작용하여 (충동적으로)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장은 "남성은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상대의 유혹을 자신의 매력에 반해서 그러는 것으로 착각한다. 특히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쉽게 '이브의 유혹'에 넘어가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여자가 삐끼녀인 줄 잘 모를까? 일산경찰서 강력5계 최규명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삐끼 술집의 여종업원 6명은 20대 초반의 미모와 늘씬한 몸매, 긴 생머리 등을 가진 여성들이었습니다. 외모에 지적인 풍모까지 풍겨 남자들이 반할 만 한 거죠. 피해자 중 바텐더 출신도 있었는데 그 사람도 가짜 양주를 구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자에게 신경을 빼앗겨 그랬다는 겁니다. 너무 예뻤다는 거예요."

 최팀장은 "어떤 피해자는 삐끼녀에 홀딱 빠져 결혼할 마음까지 먹었다"면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가짜 양주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겠느냐고 혀를 찼다. 자영업자, 직장인, 군 전역자 등 피해자 90여명 중 상당수가 25~35세 사이의 젊은이였다. 이들은 대부분 중간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고, 특히 군에서 막 제대한 경우 등 고급 양주를 맛볼 기회가 그만큼 적었기 때문에 가짜양주에 속은 경향이 있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 풍속범죄 근절에 노력해야

삐끼녀가 되어 남자를 잘만 후리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여성들을 유혹하는 포인트다. 특히 가짜 양주는 이번 '일산파 삐끼녀' 사건에서 보듯 영업마진이 최소한 50배이상이다. 대략 술값의 20~40%를 삐끼녀들의 몫으로 돌리는데, 가짜 양주일수록 높은 수당을 받는다. 하루 한탕해서 양주 2병을 팔면 안주까지 80여만원이 넘어간다. 삐끼녀는 이중에서 15~30만원까지 가져갈 수 있다. 노래방 도우미나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것보다 힘도 덜들고 훨씬 고소득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삐끼녀 영업은 분명한 범죄에 해당한다. 최팀장은 "일산파 삐끼녀들은 가짜 양주인 줄 알고 있으면서 속였기 때문에 사기죄 공범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이 컴퓨터에 입력해 놓은 봉(고객) 명단 중 상당수가 피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삐끼녀 영업 중 허가 업소에서 주인과 짜고 진짜 양주를 갖고 술값만 높이는 경우는 처벌 근거가 애매하다면서 무엇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삐끼녀를 동원한 술값바가지 행각은 국민의 생활질서를 크게 어지럽히는 범죄행위다. 언뜻 대단한 사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흔히 호객과 유인에 이은 금품사취(사기)와 폭력, 금품갈취 등이 동반되는 강력 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경찰청 통계에는 이에 대한 집계가 안되고 있다. 술값바가지뿐 아니라 단속의 대상인 일반적인 호객행위 위반도 기타 항목으로 분류돼 있고 다른 기타항목과 뒤섞여 있을 뿐이다. 기실 이런 범죄는 통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신상의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젯밤 일이 쓰라리지만 창피하고 쑥스러워 어디 대놓고 말을 못할 지경인데 당국에 신고가 제대로 되겠는가 말이다.

경찰에 따르면 삐끼 범죄는 여자가 직접 나서는 경우뿐 아니라 길거리나 사이버 공간에서 남자에 의해 여자에게 유인되는 경우, 또 삐끼녀와 피해자 구성이 1대1, 2대1, 1대2, 2대2, 1대 다수, 다수대1 등 조합이 다양하다. 직장여성이나 유흥업소 여성이 독립해 카페술집을 차리고 알던 손님을 유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법의 컨셉트가 다양하다는 얘기다. 유흥업소의 문자메시지나 전화, 메일 등 연락도 고객 마케팅 차원을 떠나 넓게 보면 삐끼 영업의 한 범주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 강력범죄의 싹이 자라고 가정 불화와 불륜 발생 등 사회의 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당국에서 호객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면서 "국민 스스로 호객행위에 의한 술값바가지 범죄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늘도 삐끼녀들은 얄미운 최면의 날갯짓을 하며, 도시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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