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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의 왼손잡이 세상]커트 코베인이 있었기에…

8일이면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째가 된다. 시애틀 그룹 너바나의 리더로 지난 세기말 ‘얼터너티브 혁명의 총아’로 떠올랐던 그는 ‘X세대 록 팬’들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채 스물일곱의 짧은 삶을 스스로 끝내버렸다.

이 위대한 천재의 삶을 앗아간 것은 약물이었다. 죽기 전 몇 달간 코베인의 삶은 혼란과 번민으로 점철된 시간들이었다. 유럽투어에서 약물과용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을 극복해낸 그는 “헤로인의 유혹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시애틀로 돌아온 후에 더 심하게 약물에 매달렸다.

운명의 그날, 코베인의 집에 경보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방문한 전기기술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대답이 없자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본 그는 귀에서 많은 양의 피를 흘린 채 엎어져 있는 코베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불행의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코베인의 턱을 겨눴던 엽총과 유서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아내 코트니 러브와 1년 7개월 된 딸 프란시스 빈에게 남긴 유서의 마지막엔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성장한 코베인은 부모의 이혼으로 커다란 상처를 받았고, 혼돈으로 가득 찬 성장기를 보냈다. 중·고교 시절 덩치가 작아서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차를 불사르는 등 절대로 그냥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코베인은 혼란스러웠던 학창 시절의 정서가 너바나의 음악에 배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록의 순수성 회복’을 부르짖으며 동향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 등과 ‘얼터너티브 혁명’을 주도한 너바나는 91년 말 앨범 ‘Nevermind’로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빌보드 팝 앨범 차트 정상에서 끌어내리며 최강의 록밴드로 자리매김했다. 첫 싱글인 ‘Smells Like Teen Spirit’은 강렬한 록 넘버임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레퍼토리가 됐다.

히피세대 부모들의 배반으로 절망과 울분에 빠진 X세대의 정서를 대변했던 너바나의 음악은 코베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발적 판매량을 과시하는 주류음악이 돼버렸다. 갑작스러운 유명세와 팬들의 기대는 자꾸만 그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음악은 더 이상 그에게 도피처가 아니었다. 족쇄일 뿐이었다. 너바나의 역사가 담긴 ‘Come As You Are’를 집필한 대니 골드버그는 코베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커트는 순수하고 친절하며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품은 교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대중음악계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죽기 얼마 전 MTV의 언플러그드 공연에 모습을 드러낸 코베인은 죽음을 목전에 둔 맹수의 울부짖음으로 ‘All Apologies’를 불렀다.

“내가 어떡해야겠니? 모두 내 잘못인데… 내가 뭐라고 말해야겠니? 모두들 즐거워하는데… 나도 너희처럼 그렇게 쉽게 즐거울 수 있었으면… 그래, 모두 다 내 잘못이야.”

코베인은 유서에 선배 가수 닐 영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유명한 노래 ‘My My, Hey Hey (Out of the Blue)’의 가사 일부분을 적어 넣었다.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불타 없어지리라.”

코베인은 그렇게 불꽃처럼 짧은 삶을 살다가 ‘열반의 세계’로 떠나갔다. 그런데 그의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었던 나는 아직도 살아 40대 중반의 허접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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