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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야기]외래 술에 사라진 ‘한국 명주’ 복원해야

역사와 문화 담긴 전통주 일제시대 거치며 명맥 뚝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탄생했고, 그 민족의 문화와 식습관 그리고 지형학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해 왔다.

한국과 일본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은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이, 과실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과실주가 발달해왔다. 어패류나 물고기 등이 주식인 에스키모들에게는 술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즉, 한 민족 혹은 나라를 대표하는 술과 음주 문화를 보면 그 나라의 사회구조와 생활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대에서도 정치적으로 외교행사에 있어서 반드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접대된다는 사실과 외교관의 연수기간 중 해당국가의 술에 대한 교육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아도 술과 한 나라의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무엇일까?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러시아의 보드카, 일본의 사케, 영국 위스키처럼 우리나라에도 대표 술이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수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세계에 내놓을 만한 대표술 하나 없다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술의 기원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민족의 문화와 역사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술의 유래도 중국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국과의 투쟁사로 일관했던 고구려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술문화가 시작됐고 백제, 신라 등에 전파됐을 것이다.

문헌상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술 이야기는 ‘고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신화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큰딸 유화가 인연을 맺는 과정에 술이 등장한다. 또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술, 된장 등)을 잘 만들었음을 의미하는 ‘선장양’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백제의 인번이 일본 응신왕 때 누룩을 이용, 술을 빚는 기술을 전수해 후대로부터 주신으로 추앙받은 사례가 나온다.

신라의 ‘신라주’는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고하주’의 모태가 됐고 당대의 문인들 사이에 크게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고려시대는 우리 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양조기술 축적으로 양조곡주문화가 성숙기에 도달했다. 대외 교섭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증류주 문화가 유입됐는데 약주, 탁주, 소주로 대표되는 우리 술의 기본 원형들이 완성된 시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과실을 이용하는 혼양주조법과 약재를 이용한 약용혼양주조법도 등장했고 누룩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 밀과 보리, 쌀 등이 누룩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술 문화를 자랑했던 시기로 현재까지 유명주로 꼽히는 술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정착했다. 고급 양조기술이 등장해 술 원료가 맵쌀에서 찹쌀로 바뀌기 시작했고, 단사입에서 고급주 형태인 중양주법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중심으로 소비되던 증류주는 조선조에 와서 일반에게 급속도로 전파돼 일본이나 중국에 수출될 정도였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술로는 삼해주, 백하주, 이화주, 백자주, 호도주, 하향주, 청감주, 자주, 국화주 등이 있고, 후기를 대표하는 술로는 호산춘, 약산춘, 노산춘, 벽향주 등이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많은 외래주도 공존했는데, 천축주, 미인주, 황주, 섬라주, 녹두주, 동양주, 금화주, 계명주 등이 이 시기에 유입된 외래주들이다.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술에 세금을 물리고 전통적인 제조방법에 일제의 통제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찬란했던 고유의 가양주들은 자취를 감추고 신식 술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식 제조기술이 강요돼 우리 술의 암흑기가 도래하게 된다. 우리 술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가양주는 밀주라는 이름으로 단속의 대상이었고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우리의 전통 양조방법도 흑국, 황국 등의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돼 우리의 전통주는 완전히 맥이 끊기게 된다.

광복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술은 더욱 자취를 감췄고 일본식 개량 막걸리와 국적 불명의 희석식 소주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새로운 술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희석식 소주와 맥주와 함께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고도주보다는 저도주 위주로 술문화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의 술문화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면 일제시대 이후 사라졌던 우리 고유의 전통술은 일본식 제조방식으로 만든 탁주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몇몇 기업들에 의해 복원되고 개량된 전통주가 틈새시장에서 겨우 생존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즐기고 있는 술은 아픈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외래주류(맥주, 와인, 위스키 등)와 국적불명의 희석식 소주가 전부인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대표하는 술은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여 년 전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로 평양 감흥로, 정읍 죽력고, 전주 이강고를 꼽았다. 이중 이강고는 고종 19년 한미통산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청국과 미국 측 대표들에게 우리 측에서 자랑스럽게 내놓은 대표주였음을 상기해보면 요즘 각종 국제 행사에서 건배주로 내놓는 상업적 냄새가 짙은 우리 술들과 비교해 볼 때 참으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제 이후 우리 술의 명맥은 철저하게 끊어졌지만, 최근 우리 술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 및 민간과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의 대표술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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