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끝없이 진화 “사랑만 나눈다?…요즘엔 호텔위에 모텔!”

투명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밖에서 감상할 수 있다.

모텔(Motel)은 모터리스츠 호텔(motorists’ hotel)의 약어로 원래 여행자들이 잠을 자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국내의 모텔은 이와 상관없이 상당수 러브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이런 때문인지 인식도 은밀히 로맨스를 하는 곳으로 정착됐다. 그래서일까. ‘모텔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가 됐다. 모텔에 대한 추억은 웬만한 성인이라면 한두 가지쯤 갖고 있을 것이다. 출장, 여행, 연애, 외박 등에서 겪었던 아스라한, 눈에 삼삼한 보랏빛, 핑크빛 비밀을 간직한 모텔…. 혹자는 (결혼) 첫날밤을 소박하게 보내기도 한 곳이며 갑남을녀의 사랑과 불륜, 친구·직장동료와의 우정이 머물렀던 공간이기도 하다. 현란한 밤의 피로와 꿈틀대는 욕망을 감싸주는 망토라고나 할까. 사랑의 갈증을 푸는 샘물이 솟아나고, 백주대낮의 하얀 욕정이 무르익는다. 이러한 모텔이 요즘 연애와 불륜의 지평을 벗어나 하드웨어의 변신과 소프트웨어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애인이건 불륜이건 당당하게 모텔로 입장

수영이 가능한 대형욕조, 피아노 등을 갖춘 프리미엄 특실.

가로수 은행잎이 연녹색 잎사귀를 진한 크레파스로 채색해가고 있던 지난 월요일 오후, 뜨는 지역이라고 소문이 난 의정부역 인근 3분거리인 신시가지 모텔촌을 찾았다. 목하 성업 중인 최신 모텔의 실상과 새로운 트렌드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시설이 좋아 보이는 한 모텔에 들어가니 반쯤 개방된 프런트에서 20대로 보이는 남녀 직원 2명이 검은 정장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주차장에는 월요일 오후인데도 대여섯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1t트럭도 보인다. 모텔 측에 어렵사리 양해를 구하고 구석에서 컴퓨터 모뎀 교체작업을 하는 척하며 ‘눈치취재’를 시작했다.

“대실로 놀다 가시게요? 일반은 3만원, 프리미엄 3만5000원, VIP 4만원입니다.” 오후 2시쯤이다.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지 30여분 만에 차소리가 나더니 한 커플이 나타난 것이다. 언뜻 30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회원인데요. 프리미엄 테마방 주세요.” “5000원 할인입니다. 일회용품 필요하시면 1000원입니다.” “하나 주세요.” “불편하신 사항 있으시면 프런트로 연락주시고….”

테마방은 신화와 전설 등을 소재로 마니아층까지 만들고 있다.

여직원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남자가 태연히 현찰로 3만1000원을 계산하고 남직원의 안내를 받아 뒤처져 있던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자 프런트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진다.

“얼마 전까지 모텔 프런트는 대부분 시외버스 매표소처럼 폐쇄돼 있었어요. 손님과 얼굴이 마주치지 않도록 한 거죠. 요새는 손님들이 당당하게 들어오고 위치나 시설 등 이것저것 따져가며 방을 잡아요. 들어갔다가도 맘에 안 든다며 바꿔 달라는 경우도 있다니까요.”

엘리(EL’Lee)호텔이라는 간판을 단 이곳은 입구 로비부터 인테리어에 상당히 신경을 쓴 느낌이다. 10번 이용하면 1회는 무료로 해주는 마일리지 카드도 운영한다. 원두커피와 토스트, 방울토마토 등을 비치해 놓았다. 객실의 특징을 소개하는 책자와 요금표도 눈에 띈다. 회원은 할인도 해주고 이용 시간도 더 준다.

“애인인지 불륜커플인지, 부부인지 감이 잡히나요?”

“자세히는 몰라도 계산하는 스타일이나 외모 차이를 보면 대충 알죠. 그러나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당당하게 들어오니까 꼭 맞다곤 할 수 없네요. 대실인지 숙박인지 정도는 거의 맞추지요.”

건강에도 좋다는 ‘황금욕조’가 등장해 목욕의 감미로움을 더하고 있다.

대낮 모텔의 풍경치고는 사뭇 밝은 편이다. 2시간여 앉아 있었는데 4커플인가가 들어왔다. 어림잡아 20~40분에 1쌍씩 들어온 것 같다. 이중 한명은 카드로 계산을 했다. 예약 및 문의 전화도 3통이 걸려왔다.

대낮이 이 정도다. 모텔 측에 따르면 오후 5시가 넘어가면 슬슬 손잡은 남녀들이 모여든다. 대실손님이다. 밤 10시가 지나면 대실은 줄고 숙박 손님들이 들어온다. 부부나 연인 사이, 친구 등의 결혼기념일, 생일파티 등을 위해 예약하고 이벤트를 요청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동성의 친구끼리 여러명이 와서 놀거나 자고 가기도 하고 촬영이나 블로그 취재 목적으로 입실하는 경우도 있다. 절반 이상이 카드를 긁는다.

#인테리어 확충에서 컨셉트형 모텔로 변신

복층으로 이루어진 특실.

최근 눈으로 즐기고, 몸으로 체험하는 테마형 모텔이 늘고 있다. 특급호텔 못지않은 시설은 기본이고, 다양한 컨셉트와 디자인을 갖춘 모텔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모텔 하면 떠오르는 침대 등 시설물들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엘리호텔 임상규 실장은 “최신 영화나 게임, 인터넷, 월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젊은층 사이에는 최고의 데이트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모텔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검색을 통해 자신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검증된 모텔만을 찾아가는 마니아층까지 생겼다”고 밝혔다.

수원 라벤더호텔 관계자는 “러브모텔 시절의 물침대나 러브침대 등 섹스를 위한 침대는 구시대적 유물이 된 지가 오래다. 침대와 함께 침구류의 고급화가 이루어지면 라텍스나 포켓스프링 침대가 대중화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VOD를 통한 최신 영화감상, 커플PC로 즐기는 게임, 100메가 광랜의 초고속 인터넷, 방보다 넓은 대형 스파&월풀 등 모텔을 즐기는 다양한 최신시설과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모텔은 단순히 휴식이나 사랑을 즐기는 곳이 아닌 다양한 데이트가 가능한 곳이 되었다는 얘기다.

포켓볼 당구대를 설치한 VIP룸.

모텔 측은 고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특히 젊은 연인층을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캐시백 서비스(안산 IMT), 해외여행 상품권(부천 리젠시), 제주도 왕복항공권 및 숙박권(제주 이채), 고급우산 증정(의정부 엘리) 등 다양한 고객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제주 이채호텔의 홍성진 대표는 “한 달간 전 객실을 40~60% 할인해 4만원에 균일가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매달 10개팀(20명)을 추첨해 왕복 항공권, 2박3일 숙박권, 렌터카, 패키지여행상품권 등 30만~70만원 상당의 경품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경기도 수원시 메이트호텔, 연예인의 화보 촬영지로 각광받는 서울 역삼동 젤리호텔, 여성을 위한 호텔로 잘 알려진 부평 박스도로시 등 유명세를 타는 모텔도 많다. 명품숍과 와인바를 설치해 고객에게 새로운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파티룸이나 수영장을 갖춘 곳도 많다. 황금욕조, 노천탕, 당구대, 오토바이 등 이색시설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텔 수요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성개방과 불륜, 즉석 만남 등이 늘어나는 한편 시설과 서비스의 대폭적인 향상과 함께, 최근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 모텔의 새로운 변화가 공개된 것을 꼽고 있다.

모텔 포털사이트 야놀자닷컴의 이수진 대표는 “모텔 수요와 발맞춘 모텔의 시설·서비스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며, 영화뿐 아니라 게임이나 휴식 등 데이트가 가능하면서도 저렴한 비용이 들어가는 모텔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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