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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용 자위기구 수입 합법논쟁…미풍양속 저해 등

“분명한 음란물” vs “엄연한 행복권”

꿈틀거리는 욕망 너머에 뭐가 있을까? 여성의 자위기구 수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관세청의 불가 방침에 잇단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행복추구권 박탈이라는 여론도 만만찮다. 여성용 자위기구는 음란물의 딱지를 떼고 밝은 곳으로 나올 수 있을까…. (사진은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함)

음란물인가, 행복추구 용품인가? 여성용 자위기구는 과연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을까? 지금 법정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2년째 벌어지고 있다. 한 수입업자가 관세청과 검찰을 상대로 한 싸움이다. 지금까지 승부는 1승 1패로 팽팽한 접전이다.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은 지난 5월19일 인천지법이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여성성인용품 수입금지는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린데 대해 불복, 10일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관세청과 검찰의 공동 항소 지휘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성자위기구를 관세법 제234조에 의거한 수출입금지 물품으로 계속 묶어두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번 소송은 최근 성과 관련된 풍속의 변화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민정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성용 자위기구의 수입통관 소송 랠리

인천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신수길)는 지난달 19일 서울 소재 ‘A수입업체’가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보류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업체는 2007년 8월 여성용 자위기구 10개를 수입하기 위해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에 통관을 신청했으나 세관 측이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통관을 보류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민 개개인이 이 사건 물품과 같은 성기구를 사용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적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용 자위기구라는 이유만으로 수입통관을 보류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물품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가치질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돼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기에 앞서 A업체는 남성의 성기와 유사한 형태의 실리콘으로 제작된, 내부에 진동장치를 장착한 여성용딜도를 항공편을 통해 수입하려다 지난해 8월 인천공항세관 당국에 의해 통관보류 처분 결정을 받자 이것이 관세법에 다른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는지 관세청에 심사청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관세심사위원회는 3개월 후 “미풍양속을 해치는 기준에 대해 대법원의 판례는 없으나 쟁점물품은 남성의 성기를 모조해 여성의 쾌감을 높이기 위해 제조된 것으로 사회통념상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물품, 내지는 이에 준하는 물품으로 판단된다”며 수입통관 보류처분은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현재 A수입업체건과 유사한 소송 1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세관 당국이 A수입업체 소송건에 대해 내린 1심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함으로써 여성용 자위기구의 합법적 수입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의 국면을 맞고 있다.

#여성용 자위기구, 한번도 허가한 적 없다

현행 관세법에는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풍속을 해치는 서적·간행물·도화·영화·음반·비디오물·조각물 등과 기타 이에 준하는 물품 ▲정부의 기밀을 누설하거나 첩보활동에 사용되는 물품 ▲화폐·채권 기타 유가증권의 위조품·변조품 또는 모조품은 수출입을 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건국 이래 여성용 자위기구를 수입허가한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소송이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해 언론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현재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나 성인용품 매장에 가면 관세청 개청 이래 단 한번도 허가한 적이 없는 외제 여성용 자위기구가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 B사이트 등에는 ‘일본 직수입’ ‘정통 독일산’ 등 안내와 사용설명, 효과 등을 자극적인 문구로 선전하며 진열해 놓았다.

이 사이트 여성 관계자는 “도매상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다”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것은 아니고, 주문이 많이 들어와 좀 바쁘다. 다른 직원도 발송작업하느라 분주하다”고 말했다. 상당한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인천세관 관계자는 “그것은 개인적으로 갖고 들어온 것일 수도 있고, 세관의 눈을 피해 몰래 장난감 등으로 위장 밀수하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 요즘은 국산품도 상당히 유통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세관을 통하지 않은 수입물품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며 “인천세관의 업무가 많아 모조리 잡아내지는 못하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관세청이 여성용 자위기구를 포함한 일부 성인용품을 불허하겠다는 의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분출되고 있다. 수입업체나 판매 사이트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2006년 8월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국제 성교육 박람회(섹스포)’에서 전시된 상당수 물품에 대해서도 음란물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 이로 인해 이 전시회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 “성인용품 제한은 행복추구권 박탈” 여론

자위행위는 직접적 성애 대상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자위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견해가 다양한 사회 문화 건강 심리적 측면에서 공존하고 있다.

최근 김태희 감독의 영화 ‘동거, 동락’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청과 조윤희가 열연한 ‘동거, 동락’은 여성의 자위와 여성용 자위기구인 ‘딜도’가 소재로 등장한다.

한 포털사이트에는 “제가 여자인데요…, 자위기구를 하나 사려고 하는데 보통 자위는 한밤중에 하니까 진동 소리가 새어나가면 좀 그렇잖아요” 하면서 진동소리가 큰지, 진동소리가 크다면 구매를 보류하겠다는 질문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더욱 화끈하고 자극적인 자위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주변에서 눈치챌 정도라면 포기하겠다는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여성용 자위기구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중 남성의 육중한 성기모양을 기본으로 진동, 회전 등 각종 기능성을 갖춘 물품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성기를 그대로 본뜬 것들이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로 분류되고 있다. 또 여성용 자위기구를 남성들이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개개인의 성적 취향도 있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측면 등 여성에게 강한 쾌락을 안겨주려는 용도로도 활용된다.

여성포털 젝시인러브(www.xyinlove.co.kr)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한번도 자위를 해본 적이 없다는 여성은 20%에 불과했다. 오히려 1주일에 1~3회 34%, 매일 한다도 11%에 달하는 등 10명 중 8명은 자위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이 시도되고 있는 여성의 자위행위는 풍속을 해치는 ‘음탕한 행위’로 상당부분 간주돼 왔다. 남성들의 자위는 용인하면서도 여성들이 하는 것은 ‘밝히는 것’이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자위행위는 여성에게 더 유용하다고 성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연세성건강센터 배정원 소장은 “자위행위를 해서 오르가슴을 알게 되면 좀더 주체적으로 성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여성의 성적 복지가 높아지게 된다”면서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자위행위를 여성의 성적 장애 치료에 적용하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배소장은 “여성 자위기구의 수입제한을 위법이라는 판결은 여성들의 성적 권리의 자유를 조금은 더 넓혀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개인의 사생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국가가 통제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간통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듯이 자위기구야말로 국가가 통제해선 안 될 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서양화가 이혁발씨는 “사회적으로 어떤 역기능도 발생하지 않는 자위기구를 법으로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자위는 말 그대로 ‘상상의 자유’의 표본인데 개인의 욕망충족의 도구를 만들지도 수입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자위 그 자체도 해서는 안 될 음란한 것으로 치부하여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나친 자위행위는 좋지 않다는 조언도 있다. 서울명동 이윤수비뇨기과 원장은 “이들 기구의 사용은 파트너가 없다거나, 오르가슴을 느끼기 어려울 때 시도할 만하다”면서 “그러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나 이상한 모양은 성기의 점막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인용품점이 주택가에 자리잡을 정도이며 성인용품을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공공연히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관세청과 검찰은 여전히 여성의 자위기구를 음란물로 분류하기를 고집하고 있다.

이에 법원의 판단은 훨씬 현실적이고 앞서나가고 있다. 1심에서 패소한 관세청과 검찰이 앞으로 재판에서 어떤 논리로 역전할지, 아니면 법원이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여성의 행복추구권에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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