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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파일]영화계 ‘불알친구들’

충무로서 만난 죽마고우 ‘끝없는 우정’

최근 ‘님은 먼 곳에’를 내놓은 이준익 감독과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은 경동고, 개봉을 앞둔 ‘고死:피의 중간고사’ 주인공 이범수와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은 세광고 동기동창이다. 두 이감독은 고3때 같은 반이었고, 이범수와 박감독은 미술반이었다. 이처럼 중·고교 시절을 함께 보낸 충무로의 ‘불알친구’들을 살펴본다.

# 열등생과 우등생

고교시절 이준익 감독은 열등생, 이광모 감독은 우등생이었다. 당시 이들의 꿈은 영화감독이 아니었다. 세종대에서 동양화(이준익), 고려대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이광모)을 전공한 이들은 영화계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이준익 감독은 대학 중퇴 후 월간지 ‘주부생활’과 ‘여성자신’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임시직으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주부생활, 퓨처필름의 이창세 대표가 여성자신 기자로 뛰던 시절이었다.

영화와의 인연은 훗날 ‘내친구 제제’로 데뷔한 이세룡 주부생활 부장이 직장을 서울극장·합동영화사로 옮기면서 맺었다. 이감독을 서울극장 광고 담당으로 영입한 것이다(당시 피카디리는 현 신씨네 신철 대표, 단성사는 ‘친구’ ‘말아톤’ 등을 제작한 시네라인의 석명홍 대표가 광고 담당을 맡고 있었다).

서울극장·합동영화사에서 실무를 익힌 이감독은 1987년 씨네월드를 설립, 본격적인 홍보·마케팅에 나섰다. 수입·배급, 제작도 했다. 데뷔작 ‘키드캅’(1993)은 참패했지만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각광받고 있다. 고교시절 열등생이었던 그가 훗날 10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왕의 남자’ 등을 선보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이광모 감독은 미국 유학시절에 영화를 시작했다. UCLA 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뒤 귀국, 94년 백두대간을 설립해 국내에 예술영화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천국보다 낯선’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100여편의 예술영화를 선보였다. 98년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아름다운 시절’을 연출했고 요즘 두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앙대 영화과 교수직도 그만두었다.

# 청운의 꿈을 펼쳐라

고교시절 박광현 감독은 디자이너를 꿈꿨다. 홍익대 미대에 진학,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CF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웰컴 투 동막골’로 데뷔했다. 미대와 경제학·철학과 등을 놓고 고민하던 이범수는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오락부장에 입담도 좋은데 연극영화과가 좋지 않겠느냐”는 친구들의 말에.

이범수는 바른생활지도부장도 지냈다. 당시 현 시오필름의 임승용 대표는 이범수에게 왼손으로 인사를 했다가 혼이 났다. 오른손에 가방을 들고 가다가 이범수와 맞딱뜨린 뒤 엉겁결에 왼손으로 인사를 했던 것이다. 이범수의 한 해 후배인 임대표는 연세대 국문과 출신. 그는 “범수형이 깐깐한 선배였다”며 “인사 건을 계기로 친하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올드보이’ 프로듀서 등을 거쳐 ‘주먹이 운다’ ‘쏜다’ 등을 제작한 그는 요즘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송해성 감독과 ‘각설탕’ 등의 프로듀서이자 ‘엽기적인 그녀’ ‘강철중:공공의 적 1-1’ 등 80여편에 출연한 배우인 이정학은 고려중 2·3학년때 짝이었다. 검정고시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송감독), 중앙대 불문학과(이PD)에 진학한 이들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내다시피 했다. 이PD가 중대 불문과보다 한대 연영과를 더 열심히 드나든 것. 그런 두 사람이 함께 한 작품은 장현수 감독의 ‘본투킬’뿐이다. 송감독은 조감독, 이PD는 송감독의 추천에 힘입어 수하(심은하)의 매니저로 출연했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나의 결혼 원정기’의 황병국 감독과 최종현 조감독은 고교시절 감독 지망생이었다. 황감독은 한영고, 최감독은 숭실고 재학생. 이들은 유현목 감독이 이끄는 소형영화작가협회에서 만났다. ‘집으로…’ ‘나의 결혼 원정기’ 등을 제작한 튜브픽쳐스의 황재우 이사도 당시 회원이었다. 황이사는 서울고 재학생. 동갑인 황·최감독보다 2년 아래였다.

황감독은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설립한 영화학교, 최감독은 러시아국립영화학교, 황이사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다른 제목으로 최감독이 준비하던 작품. 최감독이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한 뒤 황감독이 새롭게 준비해 완성했다. 이 과정에 황감독은 최감독을 조감독으로 참여시켰다. 황감독은 튜브픽쳐스와 계약할 때까지 황이사를 만나지 못했다. 다른 작품 때문에 바빴던 황이사는 황감독을 동명이인으로 여겼다. 계약 이후에야 만난 황감독과 황이사, 그리고 최감독은 20여년 전 까까머리 때 꾸었던 꿈을 이룬 기쁨을 만끽했다.

활동분야는 다르지만 안성기와 조용필은 경동중 동기동창이다. 3학년 때에는 짝이었다. 당시 집이 안성기는 돈암동, 조용필은 정릉이었는데 둘은 방과 후 서로의 집을 오갈 정도로 절친했다. 안성기는 아역배우 출신으로 유명했지만 조용필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쨌든 먼 훗날 이들이 국민배우와 국민가수가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마산 동중 동기동창인 황정민과 방송인 강호동도 마찬가지. 당시 황정민은 농구선수, 강호동은 씨름 선수였고 1학년 때 한 반이었다. 황정민이 이내 서울로 전학하면서 둘의 학창생활 인연은 싱겁게 끝났는데 20여년이 지난 뒤 TV(MBC ‘무릎팍도사’)에서 만날 줄이야….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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