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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롯데 이대호 “7년 X맨 恨 드디어 풀었어요”

‘롯데 X맨’ 자책감 괴로운 나날

올림픽 끝나고 모든게 술~술

‘4강행’ 거짓말 이제야 끝났네요

“7년 동안 거짓말해 왔는데 이젠 당당하게 팬을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암흑과 같았던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뒤 맞이한 가을 햇살은 너무나 따스했다.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그만큼 기다려온 사람이 있을까. 그는 스스로를 ‘롯데의 X맨’이라 불렀다. 2001년 자신이 입단한 뒤로 롯데의 가을잔치 인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은커녕 팀은 곧바로 4년 연속 최하위에 처지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4강의 꿈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

그는 한국 최고의 타자로 성장했지만 팀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남몰래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젠 웃을 수 있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내년에는 꼭 4강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던 지난 7년간의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신 “가을 잔치를 즐기고 멋진 경기를 펼치겠습니다”라며 활짝 웃고 있다. 롯데 이대호(26).

‘양치기 소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7년간의 아픔을 날린 그는 데뷔 8년 만에 처음 참가하는 가을잔치에서 ‘흥겨운 한풀이’에 나선다.

#끔찍한 가을의 기억

99년·2000년 연속해서 포스트시즌에 나섰던 롯데. 그리고 이대호는 2001년 2차 1순위로 큰 기대 속에 롯데에 입단했다. 고교시절 투타에서 모두 능했던 그는 애초에 투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입단 후 첫 전지훈련에서 곧바로 어깨 부상을 당하면서 타자로 변신했다. 그의 어긋난 출발처럼 롯데도 2001년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팀간판이었던 마해영이 트레이드되면서 그의 등번호 49번을 물려받은 이대호가 활약할 틈도 없이 팀은 끝없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4년간 꼴찌, 이후에도 5-7-7위. 한번 무너진 롯데는 쉽게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프로야구의 진정한 축제 무대인 포스트시즌을 7년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대호에게 가을은 끔찍한 계절이다.

“7년 동안 남의 집 잔치 지켜보는 거 정말 지겨웠어요. 포스트시즌할 때 우리팀은 내년을 대비한다고 다른 데 가서 운동했죠. TV로 중계되는 경기는 아예 보지도 않았어요. 보기도 싫었고… 보면 마음만 아파서 그냥 경기 결과만 뉴스로 접했죠.”

#가을잔치에 가기까지

올시즌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한 롯데. 시즌 초반 롯데의 질주에 주위에선 “매년 초반에 잠깐 부는 미풍이겠지”라고 입을 모았다.

이대호는 “다들 반짝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시즌 초반 잘 나가다 중반에 고비도 있었지만 그때 감독님이 ‘무조건 4강 갈 수 있다. 내가 하던 대로, 우리가 하던 대로 믿고 하자’고 하셨어요”라며 당시의 팀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시즌 초반 선두권을 질주하던 롯데는 중반 이후 타선 부진과 마무리 부재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 가운데 이대호의 부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땐 진짜 힘들었죠. 초반 잘 하다가 슬럼프를 겪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왔어요. 몸무게 때문에 못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200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이대호였기에 그를 바라보는 눈높이는 너무 높았다.

“슬럼프를 겪고,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으니 성적은 더 안나왔어요. 해결해야 할 내가 못하니까 팀 성적은 계속 떨어졌죠. 그때 팀 선배들이 힘을 줬어요. ‘너 하나 못한다고 팀이 무너지는 건 절대 아니다. 주위 말 신경쓰지 말고 맘 편히 생각하라’는 조언이 큰 위안이 됐어요.”

당시 성적이 워낙 부진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다시 타격 밸런스가 돌아왔고, 그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홈런왕에 오르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큰 역할을 했다.

#축제에서도 돌풍 분다

롯데는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 다시 무섭게 질주했다. 그 중심에 이대호가 있었다.

“올림픽 이후 모든 게 최고로 돌아왔어요. 여유도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니 잘 되더라고요.”

마침내 8년 만에 감격적인 가을잔치 초대장을 손에 쥐었다.

“어디 나가서도 당당하게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아요. 7년 동안 거짓말만 했던 ‘X맨의 한’을 풀었잖아요.”

웃음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시야도 넓어졌다.

“올해 130만명 넘게 사직구장을 찾아주신 롯데 팬을 위해서라도 정말 가을잔치에서 더 잘할 겁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 롯데가 가을잔치에서 정말 멋진 경기를 보여주도록 노력할 겁니다.”

최근 손바닥 부상으로 결장 횟수가 잦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있어요. 컨디션 조절 잘해서 포스트시즌 때 최상의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무대인데요.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힘든 시즌이었는데 결과가 좋으니 지금은 너무 행복합니다. 팬도, 나도 소원을 이뤘으니 이젠 축제를 즐기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가을잔치 경험이 부족해 롯데가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여유있게 받아쳤다.

“올림픽보다 더 큰 경기가 어디있겠어요. 팀도 최근에 다시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어요.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겁니다.”

해맑은 웃음을 되찾은 이대호의 목소리에는 편안함이 묻어났다. 가을 잔치의 한을 롯데 팬과 즐기면서 풀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올 가을 이대호의 방망이가 흥겨운 ‘가을 한풀이’에 나선다. 롯데 팬과 자신의 7년 묵은 한을 실어 담장 너머로 날려버리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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