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춘풍]패륜인가, 패륜이 아닌가?①

과부가 누구 자식을 낳았단 말인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근친상간(近親相姦)이 법률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되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신라시대에는 남매끼리,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이 흔했고(그것이 정통 왕족의 피를 순결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초창기에는 형제자매들끼리 결혼을 하곤 했다. 이러던 것이 유교가 들어오면서부터 근친상간이 ‘나쁜 짓’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이 완벽하게 정착되는 것이 바로 조선시대였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된 조선에게 있어 근친상간이란 ‘개돼지나 하는 짓’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력하게 근친상간을 억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내내 근친상간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왜?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성리학이란 ‘틀’이 문제였다.

“여자들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내리면, 삼종지도(三從之道)야. 알간? 태어나서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 말 듣고, 시집 가서는 남편 말 들으면 돼. 그러다 남편이 죽지? 그럼 아들 말 들으면서 살면 되는 거야.”

여자들을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성리학이란 규범 안에 우겨 넣는 것 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여자들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죽었다고, 평생을 과부로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분명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도 조선시대에는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법’으로 강제했다. 이러다보니 여자들은 남자라곤 평생 남편 아니면, 친척들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남자들…. 바로 친척들과 눈이 맞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근친상간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전에 조선시대 근친상간 커플 중에는 장모-사위 커플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보다 좀 더 수위가 높은 커플! 바로 이모-조카 커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근친상간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아들(오이디푸스) 커플에 비견될 만한 이모-조카 간의 패륜인지, 사랑인지 구별이 안가는 ‘뜨거운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볼까 한다.

“저…전하! 해괴한 일이 벌어졌슴다.”

“아씨, 또 뭐야? 지금 일 하는 거 안 보여? 중요한 거 아니면, 대충 넘어가자 응?”

“그…그것이 정말 중요한 사안입니다. 덕성군(德城君) 이민의 후처인 구씨(具氏) 부인이 출산을 했답니다.”

“야, 애 낳았다는데 축하해줄 일이지 그게 왜 해괴한 일이야?”

“그것이… 덕성군은 죽은 지 꽤 됐슴다. 자식이 없어서 제 자식인 영인군(寧仁君)이 양자로 들어간 상황인데, 어떻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겠슴까?”

“야야, 단성생식도 있잖아! 황우석 몰라? 줄기세포로 쪼물딱 거리면 애 하나 못 만들겠어?”

“전하! 그게 말이 됩니까? 황우석 쫓겨난 지가 옛날입니다!”

“아 젠장, 대충 뭉개고 넘어 갈라고 했더니만…. 또 종실 여자가 바람이 난 거야? 이것들이 작정을 했나? 담합을 했나? 나 왕 할 때만 이런 골치 아픈 일이 계속 터져?”

“전하! 덕성군이 어떤 사람입니까? 태종대왕의 혈육입니다! 굽어 살펴 주소서!”

“야야, 일절만 해라 응? 내가 애들 보내서 알아 볼 테니까”

덕성군 이민…. 이 사람의 아버지가 바로 함녕군 이인이었다. 함녕군은 태종과 신빈 신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난 이로서, 나름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 덕분인지 태종에게 제법 많은 가산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이 함녕군의 아들이 바로 덕성군이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데, 과부가 애를 뱄으면 더 할 말이 있는 거 아냐?”

“아닙니다! 과부가 정조를 잃고도 목숨을 끊지 않은 것 자체가 부덕합니다!”

“하긴… 그건 좀 그렇다. 그래도 종실의 여자잖아. 전후결과는 좀 살펴봐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제 아들놈이 전후맥락을 잘 알고 있답니다.”

“이 색희 이거 아주 계획적이잖아?”

“아…아닙니다. 저는 다만…”

“알았으니까, 네 아들놈 데려와 봐.” 과연 과부 구씨가 낳은 자식은 누구의 자식일까?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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