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박인숙의 문화력시대]색다른 즐거움 ‘종이 활자의 마력’

컴퓨터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읽고 쓰고 그러면서 생기는 가장 많은 물음 중 하나는, ‘종이 신문이나 책 같은 인쇄 매체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런 물음에는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듯 안쓰러운 마음이 저며 있기도 하고, 확고하게 규정되어 있던 질서들이 다이내믹하게 급변하는 흐름을 보며 들뜬 마음도 있을 것이며,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한발 앞서 적응하려는 확인도 있겠다.

며칠 전 한 자리에서, 생전 백남준 선생의 영감의 원천이 바로 수많은 신문과 잡지였다는 화제를 접하는 팝페라테너 임형주씨의 얼굴이 가벼운 흥분으로 달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역시 상당한 수의 잡지를 열독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공감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활자 중독증 신세라고 할 수 있다.

인쇄 글자의 차별된 매력이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읽어가는 동안 지면과 눈동자 사이에 마력이 발생한다는 점일 것 같다. 활자와 눈동자 사이의 그 ‘거리’에 생겨난 길이 바로 사유의 공간이 아닐까. 그 짤막하고 빠른 길에는 무수한 자음과 모음이, 이미지와 입체 도형들과 색감들이 샤샤샥 나타나고 엉키었다가 줄을 맞추기도 하고 빙글거리면서 순서쌍을 만들기도 한다. 단지 지면에 인쇄된 명령대로 독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절도 있으면서 즐거운 사교댄스 같은 유희.

일전에 인터넷 검색 엔진 회사인 ‘구글’의 임원으로부터 소셜 미디어 강의를 접했다. 핵심역량인 검색 기능에만 집중한다는 그 회사의 비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어떤 언어로 검색을 하더라도 원하는 언어로 자동 번역하여 찾아주는 기능과 검색 취지에 적합한 순서로 나열하는 기능 등을 자랑했는데, 어쩌면 ‘구글’이라는 회사는 ‘사전’ 혹은 ‘정보 채집’ 기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를 지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가령, ‘까끌까끌한’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화면을 만져 질감을 느낄 수 있다든지, ‘겨울 냄새’라고 치면 오늘 같은 이런 냄새가 난다든지…. 오감을 작동하는 뇌의 이런 기능들은 기술과 융합하여 이미 테스트 완료됐을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물음으로 돌아가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인쇄활자가 밀려 스러지다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자문한다. 나의 대답은 점잖지만 냉정하다. “무엇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그냥 다른 것이 생긴 겁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문화마케팅전문가 박인숙>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