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김정현 “7번이나 지웠다 쓴 작품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장편 ‘고향사진관’ 낸 김정현
17년 병수발 효자아들 친구가 모티브 
감정 억누르고 쓰다보니 너무 힘들어

IMF로 기억되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 소설 ‘아버지’로 신드롬을 일으킨 작가 김정현이 최근 장편소설 ‘고향사진관’(은행나무)을 발간했다.

‘아버지’가 췌장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죽음을 앞에 두고 가족에게 보이는 눈물겨운 사랑을 주제로 했다면, ‘고향사진관’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17년간 돌본 아들의 이야기다. 이 효자 아들은 지난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 작가의 고향 친구 서용준이다.

지난 17일 만난 김정현 작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용준이와는 초등학교 4학년 4반 때 처음 만났고 그 이후 나는 1등을 한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전도 유망했지만 제대와 동시에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짐을 떠맡았다. 그 후로 서용준의 인생은 바뀌었다.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 자리를 잡을 때 고향 영주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하고,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됐다.

“겨우 증명사진 찍는 사진관이 얼마나 수익성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이 녀석은 아버지가 하시던 사진관이라서 계속 운영을 했던 거죠.”

소설의 대부분이 논픽션이다. 김 작가가 1993~1994년 2년 동안 고향인 영주에서 생활했는데 그때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의 이야기를 그대로 소설에 담았다. 워낙 말이 없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오랜 친구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법. 주인공 용준이 17년간 아버지를 지키다가 끝내 아버지를 보내고, 간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일생이 잔잔하게 그려졌다.

“친구의 이야기라 감정을 억누르려고 노력했어요. 아마 허구 소설이었으면 더 간절하고 애틋하게 그려졌겠지만 내 친구의 이야기라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김정현 작가는 서울 시경 강력계 형사로 13년간 재직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했다. 강력계 형사라는 직업과 소설가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자 “사건 조서가 한편의 소설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졌는 줄 아냐”고 반문했다.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삶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는 “내가 눈감는 순간까지 용준이를 기억하고 내 아이들의 눈을 통해 영원히 전하고 싶다. 이름을 딴 장학회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술 먹고 컴퓨터에 써놓은 원고를 지워버린 게 7번. 친구의 영혼도 방해한 책을 꼬박 1년이 걸려서 완성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다시는 소설은 쓰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그는 중국 전역을 돌면서 쓴 ‘중국인 이야기’를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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