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춘풍]혁명의 꽃 지다②

“소녀의 몸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여자 최홍만으로 태어난 이우석(李禹石)…. 그녀의 인생은 불행했다. 덩치가 최홍만이니 체형에 맞는 남자를 찾을 수 없었고, 설사 찾는다 해도 이번에는 그 얼굴이 문제였다.

“으악! 눈이 썩는 것 같아! 얼굴 돌려! 제발, 플리즈!”

“어디서 살인무기를 들고 다니는 거야! 넌 인생 자체가 불법이야 불법! 그냥 방안에 처박혀 있어!”

남자들의 홀대와 무시에 상처 입은 이우석은 그렇게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저…기 네가 이우석이란 애냐?”

“누…누구세요?”

“널 가만히 지켜봤는데, 애가 참 선하게 생겨서…”

“저, 도는 안 믿거든요?”

“나도 도는 안 믿거든?”

“그러면 왜 절…. 호…혹시, 지금 저 꼬시는 거예요?”

“음… 그 비슷한 건데, 잠깐 시간 좀 내 줄래?”

이우석 인생 최대의 사건이 터졌다.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다니…. 더구나 그 남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긴, 아니 잘생긴 남자가 아닌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남자의 신분을 알았을 때였다. 남자의 이름은 김옥균(金玉均). 한때 조선을 호령했던 명문 안동 김씨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 고종 9년(1872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홍문관 교리를 거치며 출세 길을 달려가던 전도유망한 청년관료였다. 이우석의 가슴은 요동치게 된다.

“저…저기 도련님, 미천한 몸이지만…. 소녀의 몸을 원하신다면…. 어…언제든지 도련님께 허락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지, 지금 버…벗을까요?”

“저기, 네가 뭘 좀 착각한 거 같은데…. 나는…”

“아…알고 있습니다. 제가 주제넘게 본처자리를 노릴 정도로 양심 없는 년은 아니거든요. 전 그냥 도련님을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첩도 좋고, 세컨드도 좋으니까.”

“난 그냥, 네가 혁명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부른 거거든?”

“혁…명이요? 도는 안 믿으신다면서요?”

“야! 도랑 혁명이 같냐?”

“어쨌든, 뭘 믿으라는 거잖아요! 이젠 하다하다 안되니까 미남계까지 쓰는 거예요? 그렇게 도가 중요해요?”

“도 아니라니까! 그냥 난 널 혁명투사로 포섭하고 싶었을 뿐이야!”

“혁…명…투사요?”

갑신정변(甲申政變) 터지기 10년 전 이우석은… 아니 고대수(顧大嫂 :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 108영웅 중 한명이다. 수호지 속 여장부처럼 괴력을 쓴다 하여 이우석에게 붙은 별명이다)는 개화당에 포섭된 것이다.

“너라면 우리의 혁명대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부조리한 조선사회의 관습과 악습을 철폐할 거야.”

“그래서요?”

“그러니까… 우리는 조선을 개혁하고, 우리 스스로를 부강하게 만들어서…. 에또,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고… 그러니까 뭐 좋은 일 하자는 거지”

“그게 단가요?”

“또 뭐 있어?”

“…못생긴 사람 차별하는 것도 없앨 건가요?”

“무, 물론이지! 사람은 인격과 능력으로 평가 받아야지. 얼굴로 평가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야!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 아니고, 당당한 하나의 인격체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잘못된 관습은 없애버려야 해.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입당서류 주세요. 사인할게요.”

개화당에 참여하게 된 고대수는 그렇게 혁명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난생처음 사람들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고, 그녀에게 함께 하자고 제의했던 길이 혁명의 길이라니…. 아마 고대수로서는 자살폭탄 테러를 같이 하자고 했어도 참여했을 것이다. 그녀로서는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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