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춘풍]남녀칠세부동석의 의미①

“에이, 7살짜리가 뭘 안다고…”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말은 예기 (禮記)의 내칙(內則)편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수와 방향의 이름을 가르쳤고,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어간다.”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말의 뜻은 7살이면 알거 다 아는 나이이므로 남녀를 함께 자리에 넣었다간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7살이면… 벌써 알거 다 알고, 남녀 간의 이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일까?

“에이, 7살짜리가 뭘 안다고…. 아직 고추도 다 여물지 않았는데…”

“옛날 사람들의 오바질이라니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이렇게 내외사상에 철저했던 것은 남녀차별과 여성들에 대한 성적 억압을 위해서였다. 이 내외법의 기본 취지는 여성들의 남성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당장 아이들의 교육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남자 아이가 10살이 되면 집 밖으로 보내 스승에게 공부를 배웠으나, 여자 아이의 경우 10살이 넘으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철저히 남자로부터 분리 된 삶을 강요받은 여자들…. 이러다 보니, 여자들이 만날 수 있는 남자라는 게, 자신의 친척 아니면 집안의 노비 정도가 다이게 됐다.

“사, 오촌 관계라도 남녀의 나이 10세가 넘으면 한 자리에 앉히는 걸 피하라.”

친족관계에도 규제가 들어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과잉대응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봐 들었어? 김 진사 댁 셋째 딸 있잖아? 걔가 사촌 오빠랑 붙어먹었다는구만.”

“쯥쯥, 걔 눈빛이 묘하게 흐리멍텅해 보이더니만…. 짐승도 아니고, 그나저나 김 진사가 안 됐구만.”

계속 누르다보면, 언제고 터지는 것이 물리법칙! 아무리 족쇄를 채우고, 감시의 눈을 번뜩여도 청춘남녀의 열정을 억누를 수만은 없었다. 그 결과 남자를 막아보겠다고 한 일이 근친상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조선시대 근친상간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법적으로 제재를 한다 하더라도 남녀 간의 정분을 쉽게 끊을 수 있겠는가? 자,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남녀칠세부동석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아무리 친족 간이라도 남녀가 쉽게 만날 수 있었냐는 것이다.

“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여자들은 집 밖을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남자를 만나? 아무리 사촌이라지만, 요즘같은 세상에도 사촌 보기는 힘든데….”

당시 근친상간을 제도적(?)으로 도와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남귀여가혼(南歸女家婚 : 아이가 장성 할 때까지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것) 때문이다. 이런 남귀여가혼은 장모-사위 커플(조선시대 근친상간 중 가장 빈도수가 많은 커플 중 하나였다)과 이성(異姓) 친척 간 커플(이종지간 커플)의 양산체제를 구축하게 된다(이후,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오는 친영제가 도입되면서 많이 사그러들었다).

서설이 길었는데,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이 이성 친척 간 커플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까운 중국 같은 경우에는 이성 친척은 거의 왕래가 없기에 친척이란 개념도 없었고, 그 덕분에 이들 간의 혼인도 허용이 됐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는 달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종지간에 붙어먹었다고? 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가문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이종간이면, 친 형제나 다름이 없어! 근데, 둘이 붙어먹었다고? 이것들이 사람이야?”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당당히(?) 사랑을 하고, 그 관계를 결혼 이후까지 이어나간 커플들이 있었으니…. 이야기는 다음회로 이어진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