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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여전사로 둔갑한 장화와 홍련

‘장화홍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디 언인바이티드’의 한 장면.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는데, ‘장화홍련’이 바다를 건너면 무엇이 될까.

임수정·문근영 주연의 명품호러영화 ‘장화홍련’(감독 김지운)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디 언인바이티드’(The uninvited)가 이달초 미국에서 개봉됐다. 무명배우에 신인감독, 저예산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첫주 미국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동안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의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데 비하면 나름대로 대성공이다.

그러나 명품호러 ‘장화홍련’을 기억하고 극장에 간다면 경악할 것이다. 청순하고 아련한 임수정·문근영의 자매애, 한국고전설화 ‘장화홍련’에 깃든 한과 설움, 신경질적이고 이국적인 연출과 무대장치는 온데간데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남은 것은 ‘할리우드 액션소녀 홍련’과 ‘사이코패스 장화’뿐이다.

조용하고 서정적으로 시작된 한국버전과 달리, 미국버전은 일단 집 한 채 화끈하게 날려버리고 시작한다. 자매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는게 아니라 집이 폭파돼 죽는 과연 할리우드 아니랄까봐. 게다가 언니격인 안나(원작의 임수정)는 ‘양들의 침묵’도 아니고, 처음부터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는 반 사이코패스로 나와주시니 보는 이의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집 한 채를 중심으로 두 자매와 엄마, 아빠 오직 4명만으로 펼쳐지던 ‘장화홍련’과 달리, ‘언인바이티드’에서는 자매의 남자친구들이 죽어나가는 연쇄살인도 일어나니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사람 한명 안죽이고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원작의 스릴 대신, 일단 몇명 죽여놓고 시작하는 미국식 대범함이 돋보인다. 두 자매가 엄마를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는 대목으로 가면 ‘총만 안든 한니발’이 되고 만다.

물론 원작의 악명높은 ‘한밤중 푸대자루 끌기’나 ‘○○은 이미 죽었잖니’는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디 언인바이티드’는 반전이랍시고 결말을 한번 더 뒤집어주시는데, 이게 또 기가 막히다. 이 황당함에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독자들에게 ‘직접 보시라’고도 차마 말 못하겠다.

주연배우나 분위기도 판이하게 바뀌었다. 하늘하늘 여리던 문근영·임수정의 순수함은 살인범 두셋쯤은 거뜬히 해치울 만한 ‘여전사 자매’로 둔갑했다. (실제로 두 자매가 칼도 들고 나오니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한국판에서 맨발로 물장구치던 두 자매는 온데간데 없고, 첫 장면부터 남자친구와 함께 콘돔 이야기로 농담따먹기 하는 자매가 주인공으로 나오니 한국 관객으로선 할말이 없다.

이처럼 한국판 ‘장화홍련’을 탱자가 아니라 햄버거로 만들어버린 할리우드판 ‘언인바이티드’.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한국원작을 철저히 미국화해버린 것이 흥행의 성공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원작의 장면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따라했던 ‘레이크 하우스’(시월애)나 ‘마이 쌔씨걸’(엽기적인 그녀)이 미국 관객에게 이렇다할 감흥을 남기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 그 증거다. 기본 줄거리만 남겨놓은 채 미국 10대 소녀들의 연쇄살인마 슬래셔 호러로 변신해버린 ‘언인바이티드’.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한 것은 영화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이 점만 감안하면 나름대로 한국관객들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리메이크가 아닐까.

<재미언론인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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