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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빅뱅의 추억

2006년 6월 어느 날. YG엔터테인먼트의 이 모 이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양현석 대표가 기자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였습니다. 가요 분야를 맡은 지 얼마 안됐을 때라 양 대표를 만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난 알아요’를 외치며 오른팔을 내리찍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작은 떨림이 일었습니다. 직접 마주한 양현석 대표가 무슨 얘기를 털어놓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6월30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ㅎ빌딩 사무실. 창 밖으로 펼쳐진 한강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청바지에 청모자를 쓴 양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0년간 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이렇게 기자들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양 대표가 ‘기행’을 감행한 이유는 앞으로 데뷔할 기존 10대 아이돌 가수를 뛰어넘는 아이돌 그룹 때문이었습니다. 이름은 ‘빅뱅’이라고. 빅뱅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후에 다큐 프로그램 2회분을 보여줬는데 6명의 멤버가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장기를 선보이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존 아이돌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이는 외모에다 그룹 이름도 (당시로서는) 생경하고 촌스러운 빅뱅이라고 했습니다. 그룹 이름을 진짜 빅뱅으로 할 거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원래 빅뱅은 프로젝트 이름이었습니다).

인터넷 방송과 케이블로 다큐 프로를 방송하면서 그룹 탄생 과정을 보여주고 팬들에게 판단을 맡긴다는 게 마케팅의 핵심이었습니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동방신기 같은 기존 아이돌 그룹을 뛰어넘겠다는 강한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기대가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될까’하는 의심이 훨씬 더 컸습니다.

양 대표의 야심 찬 기획이 보도되자마자 의외로 그룹 동방신기 팬들이 흥분했습니다. 동방신기도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그룹인데 왜 실력 없는 그룹으로 비하하냐는 것이었죠. 뜻밖의 불똥에 놀란 YG에서 동방신기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빅뱅의 첫 프로필 사진. 왼쪽 두 번째가 장현승.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우여곡절 끝에 2006년 7월15일. 곰TV와 케이블방송 MTV를 통해 빅뱅 다큐멘터리가 첫 전파를 탔습니다. 화면으로 처음 만난 빅뱅의 인상은 역시 ‘과.연.뜰.까’ 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미남미녀의 전유물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가장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았던 장현승이 탈락하고 최종 멤버가 5명으로 확정됐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하루 만에 조회건 수가 3000건에 달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9월2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첫 미니앨범 발매 사인회는 2000명이 몰려들었습니다. 관계자들도 놀랐고 빅뱅 멤버 스스로로 얼떨떨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척 더운 날씨였는데 교보문고 밖 대로변에 줄서있던 여성 팬들이 “빅뱅”을 너무 크게 소리를 질러 행인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팬 사인회에 참석한 빅뱅의 지드래곤.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그해 9월15일 서울 광진구 멜론 악스홀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쇼케이스가 열렸습니다. 빅뱅이 무대 위로 튀어오르면서 격렬한 춤과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2층에 앉았는데도 그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소속사 관계자가 “오늘 정식 팬클럽이 결성될 예정”이라고 흥분했습니다. 그게 팬클럽의 시초인 셈입니다. 빅뱅이 화제를 모은 것만큼은 분명해보였습니다.

데뷔하고 몇 달이 지났을까. 빅뱅과 첫 인터뷰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키가 작아서 놀랐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위해서라고 구슬려서 상수 역부터 홍대 정문까지 훑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위해였지만 신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근 30여분간 홍대 일대를 훑고 다녔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활동을 해봤던 지드래곤 외에 어색한 표정, 어색한 포즈였습니다. 촬영이 끝난 후 사진 기자 선배가 제게 속삭였습니다. “휴 애들이 너무 포즈를 못 잡아서 너무 너무 힘들다”라고요.

인터뷰 때도 수줍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무슨 질문을 하면 지드래곤만 대답할 뿐 탑은 과묵, 대성은 미소, 태양은 진지 모드였습니다. 가끔 막내 승리는 장난스런 말투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했지만 형들이 호응을 안 해주니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2006년 11월 인터뷰 당시 빅뱅의 모습. 아직은 풋풋하다. 태양의 헤어스타일이 이채롭다. 사진 스포츠칸 DB

빅뱅은 큰 관심을 끌면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국민 그룹으로 떠오르지는 못했습니다. 빅뱅을 모르는 대다수였고 변변한 히트곡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보컬인 대성이가 성대결절로 고생하는 악재도 있었습니다. 뜰 듯 안 뜨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거짓말’이 그야말로 빵 터지면서 거짓말처럼 국민그룹으로 떠올랐습니다. ‘암쏘 쏘리’이라는 가사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고, 온 국민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개별 활동도 빛을 발했습니다.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여자 주인공과 첫 키스를 하고 얼굴이 붉어졌던 소년 태양이 갑자기 울퉁불퉁한 근육을 내밀고 나타나서 ‘나는 바람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라고 외치더군요. 감개무량했습니다. 탑은 드라마 ‘아이엠 샘’에서 과묵한 학교 짱을 연기하더니 MKMF에서 이효리와 키스 퍼포먼스로 누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승리는 귀여운 막내 이미지를 무기로 뮤지컬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더니 초콜릿 복근을 내세운 솔로곡 ‘스트롱 베이비’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성대결절로 고생했던 대성은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 이효리에 뒤지지 않는 입담을 뽐내고 있습니다.

국민그룹으로 떠올랐던 2007년의 빅뱅. 사진 스포츠칸 DB

지난 1월30일 빅뱅의 콘서트를 갔습니다. 첫 콘서트에서 팬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라 멘트가 꼬이고 시선 처리가 산만했던 빅뱅은 어디가고 능숙하게 팬들을 요리하는 빅뱅이 있더군요. S.E.S를 패러디한 S.O.S를 결성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노래 25곡으로 무대를 꽉 채우는, 국민그룹이었습니다. 빤짝이 옷을 입고 트로트곡을 불렀던 대성은 자기 노래 ‘날봐귀순’과 ‘대박이야’를 선보였습니다. 여자를 ‘무서워하던’ 태양은 여성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능숙함을, 지드래곤은 여전한 패션감각을 뽐냈습니다. 생경하던 이름 빅뱅은 이제 국내 그룹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자기계발서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20만부를 팔아치웠고, 사라졌던 암표상이 콘서트장앞에 나타났습니다. 빅뱅이 출연하면 시청률이 오르는 효과까지 나타났습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빅뱅이 “우리는 자가발전그룹”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것만큼 빅뱅을 잘 정의하는 표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드래곤이 작사작곡을 하고, 안무도 그룹 내에서 해결하고, 의상 코디도 각자 다른 개성으로 남들은 없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거죠. 조각같은 외모에 쭉쭉 뻗은 다리는 아니지만 동네 동생같 은 친근함으로, 옷을 ‘깔’별로 맞춰 입지 않아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 개성으로 사랑받고 있는거죠. 빅뱅은 슬랭으로는 ‘큰 총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3년 전 빅뱅은 따분한 가요계를 시끄럽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이룬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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