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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디저트]벤치클리어링 롯데와 SK가 사직에서 만난 날

 지난달 23일 문학구장에서 SK와 롯데가 붙었다. SK 채병용의 몸쪽 공에 롯데 조성환은 얼굴을 맞고 수술까지 받았다. 몇 분 뒤에는 롯데 김일엽의 몸쪽 공에 SK 박재홍이 흥분하면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롯데 공필성 코치와 박재홍 사이의 감정 싸움도 일어났다.

 2주가 지났다. 롯데와 SK가 다시 만났다. 장소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최고 열혈 팬이 모이는 사직구장. 어린이날 만원관중 앞이었다.

 △조심, 또 조심

 SK 선수단은 이날 평소와 조금 다르게 사직구장에 들어섰다. 보통 원정팀이 입장하는 출구는 사직구장 정문이다. 하지만 SK 선수단은 경기 시작 2시간30분 전 3루쪽 출구로 들어왔다. 사직구장 정문 쪽에는 훨씬 많은 인파가 모여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출구를 택한 것이다.

 선수단 버스도 외야 쪽에 대기하고 있던 평소와 달리 이날은 3루 출입구 밖에 대기했다.

 롯데 역시 안전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썼다.

 7일까지 3연전 내내 경호 인력을 기존 140명에서 200명으로 증원했다. 특히 평소 1개 중대(80명)였던 경찰 병력도 3개 중대로 늘렸다.

 △감독 간 화해

 SK 김성근 감독은 사직구장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롯데 덕아웃으로 향했다.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덕아웃에서 로이스터 감독이 나오기를 한참 기다리던 김 감독은 결국 로이스터 감독이 있던 롯데 선수단 식당까지 찾아가 ‘둘만의 대화’를 가졌다.

 SK와 롯데는 당초 경기 전 공식적인 ‘화해의 장’을 마련했다. SK에서는 김 감독과 박재홍·채병용이, 롯데에서는 로이스터 감독과 공필성 코치·김일엽이 그라운드에 나와 관중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앙금을 풀고, 이 장면의 중계를 맡은 방송사가 생중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출발하려던 김 감독에게 로이스터 감독이 통역 커티스 정을 통해 전화를 걸어왔다. 그 자리에 나가지 않을테니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날 이후 김 감독으로부터 사과 전화를 받았고 조성환을 병문안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어린 사과를 이미 받아들였다. 양 팀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가 공식적으로 화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로이스터 감독이 밝힌 이유다. 이미 마음을 주고받았는데 굳이 관중 앞에 나서야 하겠느냐는 얘기다.

 약 5분 동안 로이스터 감독을 만나고 나온 김 감독은 “공식 자리가 그대로 진행됐다 하더라도 경기 전 로이스터 감독을 따로 찾아가려고 했었다”며 “이미 문학에서 끝났는데 일부러 와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며 “같은 감독 입장에서 주장이 다쳐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재홍의 수난

 이날 사직구장 만원관중에 가장 시달린 사람은 다름 아닌 박재홍이었다.

 경기 전 롯데 덕아웃을 찾아 공필성 코치에게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한 박재홍은 시즌 처음으로 지명타자로 나섰다. 주전 외야수 박재홍을 지명타자로 돌렸으니 선수 보호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재홍이 타석에 등장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5회에는 ‘위험 상황’도 나왔다. 2사후 4번 이호준이 투런홈런을 쳐 SK가 4-0으로 달아난 뒤 박재홍 타석. 롯데 선발 조정훈이 잇달아 몸쪽으로 바짝 붙여 던졌다. 박재홍이 바깥으로 빠지는데도 몸쪽 볼은 계속 됐다. 결국 볼카운트 1-3에서 5구째 박재홍의 가슴 쪽으로 깊숙한 공이 들어와 볼넷. 박재홍은 7회 네번째 타석에서 대타 김재현으로 교체됐다.

 SK의 4-0 승리가 굳어지던 9회말, 박재홍은 다른 선수들보다 일찌감치 경기장을 나와 김 감독의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몇몇 롯데 팬은 물병을 던졌다.

 삼엄한 경비 속에 큰 불상사는 없었지만, 경기를 모두 마친 SK 선수단 차량에도 몇몇 롯데 팬이 물병 등 오물을 집어던지며 14연패 분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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