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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파일]자장면 에피소드

배우들이 극중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식욕을 자극한다. 영화를 보고 나와 곧장 그 음식을 찾게 만들고는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자장면이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김씨표류기>의 백미로 손꼽힌다. 영화를 본 관객 중 십중팔구는 \"자장면을 먹지 않을 수 없다\"고들 한다.

# 모래 섞인 자장면 맛있게 먹어
‘자살에 실패한 김씨(정재영).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 나홀로 삶을 연명한다. 어느날 우연히 눈에 띈 짜파게티 스프. 자장면에 사로잡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새가 싼 똥에 소화 안 된 씨앗이 있을 거라며 새똥을 심는다. 기적적으로 싹이 돋고 옥수수를 수확한다. 가루를 내 면을 만들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자장면을 먹는다.’

<김씨표류기>에서 백미로 손꼽히는 장면이다. 객석은 웃음과 눈물의 도가니를 이룬다. 관객들 사이에 “내게 자장면은 희망이야”라는 김씨의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제작진은 한강과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63시티 중식당에서 정재영과 이해준 감독이 관객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표류기>의 김씨가 자장면을 자급자족 하게 되는 과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은 절망 속에서 찾아가는 희망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해준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 철저히 김씨의 욕망을 따라갔다. 김씨의 일상을 구성하면서 김씨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일는지 고심했다. 자장면이 떠올랐다. 자신도 그랬듯 휴가 나온 군인들이 제일 먼저 찾는, 서민들이 즐기는 음식인 것이다. 식생활 기호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보편적 욕망을 상징하는 음식인 것이다.

촬영을 앞두고 제작진은 강동구의 한 밭을 빌려 새똥에서 자랄 옥수수·잡초 등을 심었다. 강원도의 옥수수시험실에서 좀 자란 옥수수, 색색 알이 박힌 옥수수를 뿌리채 사다가 심어놓고 촬영했다.

제작진은 또 실제로 옥수수가루에 전분성이 있는 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었다. 따끈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미술팀이 정재영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계속 면을 반죽하고 삶았다. 강가여서 신경을 적잖이 썼지만 그럼에도 모래가 섞이는 바람에 정재영은 그렇잖아도 힘든 ‘먹는 연기’를 하는 데 더욱 고역을 치렀다. 굉장히 중요한 장면인 데에다 정재영이 욕심을 내 13번이나 재촬영을 했다.

<신장개업>(왼쪽)과 <북경반점>. <신장개업>에서 채소장소(김세준)가 이보다 더 기막히게 맛있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다.

#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인어공주’에서 연순(전도연)은 자장면을 어쩜 이렇게 맛있냐는 듯 먹는다. 진국(박해일)이 자기 것을 덜어줄 때 빈 말로라도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아 한 젓가락에 해치운다.

이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촬영 막바지에 박해일이 내놓았다. 진국이 연순에게 더욱 다가서고, 둘 사이에 친근감이 넘치는 장면의 하나로 자장면을 사먹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박흥식 감독이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극중에선 우도의 우체국 인근이지만 촬영은 서울 독립문 근처의 한 중국집에서 찍었다. 제작진은 극중 분위기에 맞는 중국집을 물색, 오후부터 저녁까지 세를 냈다. 20만원을 계약금으로 주고, 저녁에 촬영을 마친 뒤 제작진이 회식을 하는 조건으로.

‘신장개업’에서 채소장수(김세준)도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서 채소를 파는 그는 매일 중국집 아방궁을 찾아 그때마다 자장면 한 그릇을 ‘이보다 기막힐 수 없다’는 표정으로 뚝딱 해치운다.

이 장면은 경기도 양수리 남양주종합촬영소에 지은 마을·상점 세트에서 하루에 몰아 찍었다. 그러느라 김세준은 자장면을 원도 한도 없이 먹었다. 자장면은 초빙한 중식 요리사가 현장에서 만들었다. 이날은 제작진 저녁 메뉴가 자장면이었다. 자장면에 물린 김세준은 저녁을 굶었다.

‘신장개업’보다 1개월 앞서 개봉된 ‘북경반점’은 촬영 기간 내내 두 유명 중국인 요리사를 스태프로 참여시켰다. 이들은 좌종당계 등 갖가지 유명 요리는 물론 자장면도 직접 만들었다. 정통 춘장을 사용하면서 맛이 기막힌 자장면을 개발한 북경반점이 다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200여 그릇이나 만들었다. 한 라면회사는 이 영화 개봉에 맞춰 ‘북경반점’이란 제품을 내놓았다.

<엽기적인 그녀>(왼쪽)와 <위대한 유산>. <엽기적인 그녀>에서 두 주인공이 자장면 한 가닥을 같이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극중에 나오지 않는 장면으로 포스터에 등장, 눈길을 끌었다.

# 소품용 ‘국민음식’은 자장면
영화상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음식은 자장면이다. 자장면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똥파리’ ‘작전’ ‘달콤한 거짓말’ ‘추격자’ ‘내 사랑’ ‘우아한 세계’ ‘그놈 목소리’ ‘오래된 정원’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라디오 스타’ ‘살인의 추억’ ‘주유소 습격사건’ ‘오! 브라더스’ ‘위대한 유산’ ‘집으로…’ ‘오아시스’ ‘파이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개봉을 앞둔 영화 중에는 ‘거북이 달린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오래된 정원’ ‘라디오 스타’ ‘집으로…’ ‘오아시스’ 등의 자장면은 미가 남다르다. ‘김씨표류기’처럼 사랑·우정·행복·소통 등의 의미를 지닌다.

‘오래된 정원’에서 현우(지진희)는 경찰을 피해 윤희(염정아)의 집에 숨어 지낸다. 어느날 중국집에서 현우는 짬뽕, 윤희는 자장면을 먹는다. 바꿔 먹기도 한다. 이 모습은 두 사람 사이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묘사된다. ‘라디오 스타’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최곤(박중훈)의 자장면을 비벼준다. ‘오아시스’에서 종두(설경구)와 공주(문소리)는 배달시켜 먹는 자장면은 이들에게 최고의 만찬이다. ‘집으로…’에서 상우(유승호)는 할머니(김을분)가 쌈지돈을 털어 사준 자장면을 먹은 뒤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다.

한편 ‘미녀는 괴로워’ ‘엽기적인 그녀’ 등도 자장면과 관련이 깊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제니(김아중)의 미모에 놀란 중국집 배달부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가다가 넘어져 자장면을 뒤집어 쓴다.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극중에 자장면을 먹는 장면이 없는데 주인공 차태현과 전지현이 자장면 면발 하나를 같이 물고 있는 장면을 포스터에 담아 눈길을 끌었다.

‘복수는 나의 것’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등에는 자장면 배달 장면만 나온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달부는 류승완 감독이 맡았다. ‘라디오 스타’에서 최곤·박민수 등이 자장면을 배달시킨 중국집의 주방장은 이준익 감독이 해냈다.

<배장수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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