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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격정토로-1] “ “계약서 공개해 시시비비 가리자”

 궁지에 몰린 쥐 같았다.

 선수단에서 나와 28일 밤 서울 홍대 인근 와인바에서 기자들을 만난 이천수(28·전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왔다. 내가 진짜 나쁜 놈인지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다”고 참을만큼 참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소속으로 수원 임대를 거쳐 올 2월 전남에 재임대 된 이천수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페예노르트가 이천수를 팔아 현금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추진중인 이적임에도 많은 축구팬은 “힘들 때 받아준 박항서 감독과 전남 구단에 대한 배신이다”, “이면 계약이 있었다”, “돈을 위해 몰래 이적을 추진했다” 등 이천수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에 이천수는 “하루하루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짓을 했는지 모든 것을 공개한 다음 명확하게 평가받고 싶다. 이 자리에서 이적에 대한 모든 부분을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천수는 “페예노르트에서 받는 연봉 이상을 제시하는 구단이 있으면 무조건 이적해야 한다는 조항은 급조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박항서 감독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며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까지 솔직하게 털어놨고 자기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페예노르트에서 전남에 보낸 팩스까지 들고나왔다.

 이천수는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나와 전남 구단이 모든 걸 공개해서 누가 뭘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가리자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부분은 매를 맞겠다. 대신 전남 구단도 계약 절차 상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전남은 “이천수가 감독에 항명하고, 코치와 주먹다짐을 벌였다. 또한 2군 일정을 따르라는 감독의 지시도 어겼다”며 29일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임의탈퇴시키기로 했다.

 다음은 이천수와 인터뷰.

 -왜 구단에서 나왔는가.
 “구단이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감독님과 코치들도 언론 보도만 보고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어제(토요일)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감독님에게 대화를 요청하던 중 김봉수 코치가 유리컵을 나를 향해 던졌고 그 컵의 파편에 브라질 통역이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드는 김봉수 코치를 피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구단에서는 내가 김봉수 코치를 폭행했다고 주장한다. 이 소식을 들은 페예노르트 관계자(알 나스르 이적건 처리를 위해 페예노르트에서 파견한 한국인 통역)가 계속 머무르면 좋지 않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으니 선수단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서울로 왔다.”

 -위약금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위약금은 계약상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지난 2월 전남과 임대 계약을 맺을 때 전남이 연봉 백지 위임과 동시에 임대 기간 중 팀을 떠날 시 연봉과 임대료를 합한 금액만큼 위약금을 물라고 했다. 난 고민 끝에 연봉 백지 위임을 받아들이겠지만 임대료에 대한 위약금은 물지 못하겠다고 했다. 임대료는 내가 받는 금액이 아니라 구단끼리 주고 받는 돈이기 때문이다. 내가 끝까지 위약금에 대한 부분은 합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전남과 계약이 무산될 뻔 했다. 그런데 당시 일을 봐주던 IFA 김민재 사장이 나서 위약금에 대한 사인을 했다. 난 ‘이건 말이 안되는 계약이다. 사인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는데 김민재 사장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실제로 위약금에 대한 부분에 내 사인은 없다. 전남과 김민재 사장의 사인만 있다. 전남에게 공개해 달라고 요청해보라.”

 -그렇다면 전남은 위약금 3억7500만원을 김민재 사장에게 청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왜 자꾸 나를 결부시켜서 내가 물어야 하는 돈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는지 모르겠다. 마치 은혜도 모르는 놈이 갚아야 할 돈까지 안 갚고 떠나는 것처럼 보여 속상하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약금은 나와는 관계없다.”

 -페예노르트에서 받는 연봉 이상을 제시하는 구단이 있다면 무조건 이적해야 하는 조항은 자작극이라는 얘기가 있다.
 “자작극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급조된 것은 맞다. 처음 페예노르트에서 이적이 가능할 거 같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전남을 떠나면 박항서 감독님이 다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점을 나와 측근들, 그리고 김민재 사장이 같이 고민했고 결국 ‘페예노르트에서 받는 연봉 이상을 제시하는 구단이 있다면 무조건 이적해야 하는 계약이 있다’는 조항을 새로이 만들기로 했다. 페예노르트도 이적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협조하겠다며 동조의 뜻을 밝혔고 이에 관한 내용을 전남에 팩스로 보냈다. 전남에 거짓말한 모양새가 됐지만 의도는 박항서 감독님을 보호하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다. 계약상 이런 일을 벌이지 않고 페예노르트로 떠나도 상관없었다.”

  <김종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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