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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격정토로-2] “인간적인 모욕이 이적 결심 이유”

-그렇다면 이적 거부가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예전부터 전남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적인 모욕을 많이 당했다. 연봉 백지 위임에 합의할 때도 양 측이 언론에는 절대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천수 연봉0원’이라는 기사가 나오더라. 자존심이 상한 것은 물론이고 구단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징계 기간 중 선수단에 격려금이 나왔을 때 나만 받지 못했다. 당시 2군에서 한 경기도 못 뛰던 선수가 70만원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나중에 감독님께서 자기 몫에서 30만원을 떼서 주셨다. 연봉 계약도 너무 힘들었다. 월봉 2500만원이라는 최종 합의가 늦어지면서 첫 월급을 6월초에야 받았다. 최근 상황도 구단에 섭섭하다. 나는 구단에 일단 로테르담에 가서 이적에 대한 명확한 조건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세부 사항을 알아야 이적 결심을 하든, 거부권을 행사하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이천수가 이적을 원해 보내줘야 할 것 같다’고 보도됐다. 실무자들도 내 얘기를 듣기 보다는 ‘이런식으로 해서는 너한테 득 될 것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만 반복했다. 이적 결심을 굳힌 뒤 박항서 감독님께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전남 구단에는 미안한 마음이 없다.”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나보다.
“그런 것 같다. 박항서 감독임이 나에게 약속했던 부분이 실제 연봉 협상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전남과 얘기를 시작하기 전 중국과 일본 팀에서 관심을 보였고 K리그 두 팀도 접촉중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사실상 전남 유니폼을 입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 채널이 갑자기 전남 하나로 줄어들었다. 입단 협상이 연봉 백지 위임과 위약금 문제로 제자리걸음 할 때는 전남과 계약하지 말고 6개월 간 쉴 생각까지 했었다.”

-이적 결심에는 연봉 등 실리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을텐데.
 “그렇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알 나스르가 일단 1년 계약을 요청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1년만 열심히 하면 다시 FA가 될 수 있다. 사실 이것도 나에게는 모험이다. 페예노르트와 아직 계약기간이 2년 이상 남았기에 알 나스르와 1년 계약하면 페예노르트에서 받을 수 있는 1년 연봉은 포기하는 셈이다.”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 이번 이적은 페예노르트가 추진한 것인가.
 “그렇다. 전남이 6월1일까지 나의 완전 이적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갖고 있었고 이후에는 8월까지 페예노르트가 내 이적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나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 김민재 사장에게 들어서 알았다. 사실 속으로는 ‘잘 하면 전남을 빨리 떠날 수도 있겠구나’하고 좋아했다. 페예노르트가 유럽과 중동의 몇몇 팀과 접촉하다 알 나스르와 합의했고 난 알 나스르가 제시한 연봉과 1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맘에 들어 사우디행을 결심한 것이다.”

-계약서만 본다면 이대로 페예노르트로 출국해도 상관 없지 않은가.
 “그렇다. 위약금은 나와는 상관 없는 문제이고 6월부터 8월까지는 페예노르트가 내 이적 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지금 출국해도 상관없다. 알 나스르가 메디컬테스트 등 이적 막판 조율을 위해 7월2일까지 합류를 요청한 상황이라 하루 빨리 출국하는게 좋다. 페예노르트도 전남에 보낸 최근 팩스에서 ‘하루 빨리 이천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전남에서 6월치 월급을 이미 받은 상황이라 30일까지는 구단에 머무르려고 했다.”

-돈이 없어서 무리하게 이적을 추진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있지만 집에 부탁하면 못 갚을 정도는 아니다. 단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요점만 정리한다면.
“페예노르트가 이적을 추진했고 난 그것에 동의해 이적하려는 것이다. 위약금은 나와는 상관없고 김민재 사장과 상관있다. 전남은 위약금을 김민재 사장에게 받으면 된다. 나는 조만간 로테르담으로 건너가 알 나스르의 구체적인 제안을 살펴본 뒤 최종적으로 이적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위약금의 일부를 책임지겠다고 하던가 아니면 이적 거부권을 행사해 전남과 남은 시즌을 함께 할 생각은 없는가.
“그럴 생각은 전혀없다. 지금까지 전남과 언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사실을 다 알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고 싶을 뿐이다.”

  <김종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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