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인터뷰&]우리캐피탈 김남성 감독 “겨울엔 돌풍 아닌 실력 보여줄것”

신생팀 핸디캡 극복 위해 8개월간 혹독 조련

컵대회 4강진출 해볼만하다는 자신감 얻어

‘강호’ 삼성화재·현대캐피탈에 겁없는 도전

‘돌풍’이었다. 그리고 신선했다. 갓 태어난 신생팀이 데뷔 무대에서 전년도에 챔피언을 다툰 강호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을 벌이고, 우승권에 근접한 대한항공은 완파했다. 지난 2일 끝난 부산 IBK컵 국제배구대회에서 4강의 파란을 일으킨 우리캐피탈.

대회 전만 해도 “1승 혹은 2승이 목표”라고 밝혔으나 예상을 깨는 성적으로 올시즌 프로배구 판도 변화의 핵으로 떠오른 우리캐피탈의 김남성 감독을 만났다.

#“세상에 공짜가 있나요?”

먼저 돌풍의 비결부터 묻자 ‘승부사’ 김남성 감독(57)은 특유의 표정으로 씩 웃었다.

“놀면서 돌풍을 일으킬 순 없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성균관대 감독 시절부터 선수를 쥐잡듯 하는 훈련으로 유명한 김 감독. 프로지만 신생팀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8개월 동안 단내나게 훈련시켰다고 한다.

강한 승부욕과 혹독한 조련으로 별명이 ‘독사’냐고 묻자 김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컵대회를 앞두고 가진 우리캐피탈의 팬사인회장. 월드리그에서 스타덤에 오른 신영석 등 선수들이 소녀팬에게 사인해주는 동안 김 감독은 옆에서 열심히 휴대전화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선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이같은 세대차를 극복하려는 노(老) 감독의 노력(?)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폰카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별거 아니더라고요. 메일로 사진을 보내줬더니 선수들이 좋아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도 독사라고 하실 건가요. 허허…” 

#전화위복 인생

김 감독은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일곱번째. 식구가 많았지만 양조장을 하신 아버님 덕분에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다.

있는 집 아이 김 감독이 배구공과 인연을 맺은 것은 남성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 배구부가 있었는데 사람이 모자라 대회를 못 나갔어요. 급하게 머릿수를 채웠는데 우연히 초등학교 때 축구 골키퍼를 한 제가 끼게 됐죠. 운동신경이 있었는지 들어가자마자 주전이 됐습니다.”

우연히 잡은 배구공의 재미에 빠진 김 감독은 부모님을 반대에도 배구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사생결단식으로 졸랐다.

급기야 부모님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형과 누나를 불러 가족회의까지 했으나, ‘배구로 꼭 성공하겠다’고 고집을 접지 않는 김 감독을 끝내 말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김 감독은 배구 명문인 대신고와 성균관대에 입학해 부모님 기대에 부응했다.

대학교까지는 승승장구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레프트 공격수로 제법 이름을 날렸지만 작은 키(178㎝) 때문에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장 때문에 선수로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죠. 마음이 아팠지만 대신 지도자로 성공하기로 마음먹었죠.”

당시 미도파의 이창호 감독과 현대건설의 전호관 감독이 대표출신이 아닌데도 명장이 된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은 김 감독은 81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성균관대 감독으로 지도자길로 들어섰고, 이후 신진식 등을 키워내며 ‘배구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삼성화재의 조직력 & 현대캐피탈의 파워

‘신진식 파동’으로 성균관대를 물러난 김 감독은 이후 현대건설·명지대 감독으로 배구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하지만 프로팀과는 인연이 없어 프로의 지휘봉을 잡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너무나 멀리 돌아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일부러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뜻으로 여긴다”고 미소짓는 김 감독. 막 창단된 우리캐피탈에서는 어떤 배구를 꿈꾸고 있을까.

“컵대회를 통해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양강 체제를 구축하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 도전장을 내고 싶습니다. 탄탄한 조직력이 돋보이는 삼성화재와 파워가 좋은 현대캐피탈의 장점만을 가진 팀으로 거듭나 오는 겨울리그에서 돌풍이 아닌 ‘실력’을 보여주겠습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