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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맞은 정태춘·박은옥, “삶과 세상을 노래했다!”

 부부는 지난 2002년부터 지금껏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 조차 6년여간 끊고 지내왔다.

 되짚어 보면 이는 우리 탓이다. “아직 세상은 좋아져야할 것이 많다”고 했던 그의 읊조림에 “세상 이미 좋아졌잖아요”라고 반문하곤 했던 것은 바로 우리였다. 다시 종로 길거리에서 그의 새노래를 만나고 싶지만 필요에 따라 귀를 닫거나 열고 마는 우리네의 가벼움이 그런 소망을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든다.

 ▲ 정태춘·박은옥을 만나다

 정태춘·박은옥과의 인터뷰는 올해로 맞는 데뷔 30주년을 핑계로 이뤄졌다. 인터뷰 요청에 애써 손사레를 쳤던 부부도 모처럼 말문을 열고 취재진을 맞았다. 수수한 모습 그대로였다.

 정태춘·박은옥이 한국 가요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부는 한때는 사랑스럽거나 한국적인 감성의 노래로, 또 한때는 시대를 질타하는 노래로 대중들을 어루만졌다.

 84년 발표된 ‘떠나가는 배’ ‘시인의 마을’ ‘사랑하고 싶소’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 85년 울려퍼진 ‘북한강에서’ ‘봉숭아’ ‘애고 도솔천아’, 88년 소개된 ‘실향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93년 명반 8집 수록곡 ‘92년 장마, 종로에서’ ‘나 살던 고향’ ‘저들에 불을 놓아’, 98년 ‘민통선의 흰나비’ ‘건너간다’, 2002년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리철진 동무에게’ ‘압구정은 어디’…. 부부의 노래는 분명 가요계 그 어느 가수의 노래보다 따스했고, 묵직했다.

 오랜 만에 만난 정태춘(이하 정)에게 노래 만들기를 접은 연유부터 물었어야했다.

 “나 나름대로 대중들하고의 교감이 사라졌다고 봤습니다. 나는 절망과 좌절감을 느꼈는데, 그런 것을 표현할 때 사람들은 받아들이질 못했고요. 왜 복잡한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었겠죠. 나는 내가 살아 숨쉰 공통체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있다 싶었고, 결국 달리는 문명의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지요.”

 곁에 있던 박은옥(이하 박)은 남편의 이야기를 수습하려 했다. 그는 “이 이야기는 한두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면서 “곡해될 수 있고 간단히 말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라 인터뷰도 마다했던 것”이라며 거들었다. 또 “나의 경우에는 내가 존경하는 정태춘씨가 그 재능을 감춘다는게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내 노래가 유용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감사하지만, 새 노래로 대중들을 다시 만나지는 못할 것같습니다. 자본이 인류를 시스템화하고 더 절망감으로 접어들게 하고 있을 이때, 사람들은 ‘무슨 엉뚱한 이야기를 하냐’고 받아들이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하지 말자 싶었습니다.”(정)

 “아니에요. 이 사람 열정이 다 사라졌다면 이런 이야기도 안할 것입니다. 이 사람은 표현자입니다.”(박)

 ▲ 그간?

 그동안 정태춘은 노래 대신 시집을 내고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2004년 ‘노독일처’는 노래를 대신해 그의 고뇌와 문명의 열차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그의 어깨에 걸린 낡은 카메라에는 시골 어귀의 자연이, 혹은 일꾼의 거친 손과 해맑은 얼굴이 담기고 있다.

 그사이 정태춘은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싸움에 참가키도 했다. 박은옥은 “정태춘씨가 그때 처음으로 목졸려서 연행이 되어갔었다”면서 “그때 만난 지인이 ‘세상 좋아졌는데 왜 이러시냐’고 묻자 그이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느냐. 나만 모르고 있었느냐’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신자유주의, 지구상 유일한 종으로서의 인간이 갖는 우월한 마음 등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정태춘은 “우리와 같은 이상주의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지워지는게 옳다”는 말과 함께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를 원했다.

 ▲ 데뷔 30주년 공연

 화제를 돌려 오는 27일~11월1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진행될 ‘정태춘·박은옥 데뷔 30주년 공연’에 대해 물었다.

 박은옥은 “지난해 12월 서울 신사동은 한 식당에서 100여명이 몰래 모여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다”면서 “그때 온 분들이 지금 모인 ‘기념 사업단 추진위’의 구성원들이고 이번 공연도 그렇게 준비됐다”고 말했다. 정태춘 역시 “당시의 파티를 두고 내 장례식에서나 볼 만한 풍경이었다”고 기억했다.

 사회 문화 각계 인사 100인의 명단에는 단병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도종환(시인), 이철수(판화가), 오창익(인권연대국장), 이외수(소설가), 임순례(영화감독), 황대권(장기수 출신 생명운동가), 김성희(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명계남, 문성근, 윤도현, 김C, 김제동, 강산에 등 내로라한 이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정태춘·박은옥의 자취가 한국사회에서 드러내는 존재성과 가치를 방증하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100인은 이번 공연 외에 각종 미술전시회와, 사진전, 출판 등의 사업을 전개해갈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과분할 따름이지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공연과 인터뷰에도 나서게 됐습니다.”(정)

 “100인이 흔쾌히 모여주셔서 추동할 수 있었어요. 100인에는 직접 들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노래를 들어줬던 분들이 계시기에 가능했지요.”(박)

 공연은 그간의 노래 궤적을 따라 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대별로 노래가 울려퍼지고 중간중간 정태춘 박은옥의 소회가 들려진다.

 ▲ 그리고 30년

 정태춘은 “노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2~3집의 곡이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할 때, 그리고 96년 사전검열 철폐 운동 전 검열을 받을 수가 없었을때, 그리고 지금의 21세기 좌절감의 상황일때 이렇게 3번이었다”면서 “행복했던 적? 그것은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한 것 이상으로 박수와 격려를 받았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또 “음악은 나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그리고 나와 이웃, 공동체를 담아내는 거대한 무엇이었다”고 덧붙였다.

 “음악을 하셔서 행복하긴 했지요?”라는 박은옥의 질문에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30주년을 회상해달라고 부탁했다. 힘든 질곡을 거치며 시대를 아파했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

 “창작자로서 대중활동가로서 의미있는 활동을 했습니다. 격동적이면서 열정이 넘치는 공동체, 희망을 이야기하는 공동체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훨-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92년 장마, 종로에서’)

 93년 발표된 이들의 노래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세상과 시대를 묘사한 그의 노래가 다시금 널리 울려퍼지기를 희망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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