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구글 사냥 칼 갈은쉰둘 ‘디지털 소년’ 차지혁

90년대 대박신화 쓴 업계 이단아

‘사기꾼’ 낙인 씻고 10년만에 재기선언

하루 2~3시간 자며 200여 IT모델 기획

신개념 검색광고 ‘매직퍼스’ 들고

‘세계 IT 리딩기업’ 포기 모르는 도전

90년대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재벌도 부럽지 않은 벤처 성공신화를 이루며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인물이 있다. 바로 차지혁씨(52)다. 차씨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일푼에서 수천억원대의 기업을 일으켰다가 세상의 편견에 가로 막혀 빈털터리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낙인 찍히며 인생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다. 그런 그가 지천명의 나이에 재기에 나섰다. 8년간의 칩거 끝에 새로운 검색광고와 IPTV 콘텐츠로 무장, 구글 등 세계적인 IT업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루 2~3시간만 자며 명예회복의 칼을 갈았다는 차씨를 지난 4일 강남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난 살아 있다”

IT업체 골콘다아이의 CCO(Chief Crebiz Officer), 즉 창의 최고 책임자로 돌아온 차씨의 일성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것. 이를 위한 첫 행보가 11일 개최하는 신 개념 웹2.0 검색광고 서비스 ‘매직퍼스’ 사업설명회다.

“현재 구글과 오버추어가 장악한 키워드 검색광고 시장이 생기기 이전인 1999년 국내 포털업체들에게 제안했지만 시장성이 없다며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벌써 여러 포털사이트에서 연락이 오고 유명 인터넷 마케팅 대행사 두 곳과 계약을 체결했다.”

차씨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매직퍼스는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오버추어처럼 광고주가 일방적으로 광고비를 내야 하는 검색광고 서비스와 다르다. 쇼핑몰 등 인터넷 사이트 주인장이 광고비를 내면 일정 부분이 네티즌의 쇼핑 지원비로 제공된다. 네티즌이 클릭할 때마다 적립금이 쌓이고 이 돈으로 해당 사이트에서 쇼핑할 수 있다. 더구나 네티즌 클릭으로 적립금이 많이 쌓일수록 검색순위가 올라가서 광고비 출혈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차씨가 자신하는 이유는 또 있다.

“90년대에는 검색광고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할 때라서 사기꾼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시장도 있고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어 사업하기가 쉽다.”

차씨는 이날 매직퍼스 외에 8년간 구상하고 기획했던 200여개의 IT사업 중 몇 가지를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세상에 차지혁의 창의력과 열정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봉이 김선달, 동키호테, 희대의 사기꾼…

차씨는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말해주듯 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두 가지 벤처신화는 그를 ‘봉이 김선달’, ‘동키호테’, ‘창의의 미켈란젤로’로 불렸다.

하나는 90년 단돈 2만3000원과 지인들이 모아준 5000만원으로 자동차 종합관리대행사 벤처기업 ‘시티프랜’과 ‘트리피아’를 설립, 1년만에 매출 1500억원 신화를 세웠던 일이다.

또하나는 1999년 옥중에서 빠른 요표 요금 360원과 인지대 60원 등 400원으로 ‘미다스칸’이라는 개인사업자를 내면서 이룬 대박신화다. 차씨는 출소해 평화은행과 제휴, 같은 해 9월 미다스칸 카드를 만들어 100원짜리 주식을 7000원으로 70배 공모하고 3개월 후 액면가 100배 공모까지 진행, 기업가치를 2600억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상은 초졸 출신의 ‘회장님’을 가만두지 않았다. 트리피아는 야당에게 정치자금을 댄다는 등의 악성루머로 3개월간 관계당국의 내사를 받는 바람에 부도를 맞았다. 미다스칸 때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과대광고와 벤처기업 공모사기로 조사를 받으면서 또한번 좌절을 맛봤으며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주홍글씨까지 새겨졌다.

차씨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트리피아 내사나 금감위의 고발은 모두 무혐의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93~99년까지 6년여간 옥살이를 했지만 사기죄와는 무관했다.

“사람들이 한번도 해보지 않은, 금기시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그게 차지혁이 사는 방법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꿈을 현실로’

차씨는 미다스칸 이후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왔다. 월세 25만원을 내지 못해 단전·수를 당한 것이 9번이나 되고 끼니도 하루에 한끼가 전부였다. “지인이 찾아와 한턱 쏜다며 억지로 데려갈 때가 배불려 먹는 날이다.”

돈도, 가족도 없는 힘겹고 외로운 생활이었지만 차씨를 버티게 한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창의력과 상상력이다. “하루에 2~3시간을 자며 새로운 IT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 200개나 만들었다. 재기의 밑천인 셈이다.”

차씨의 창의적 열정을 일으켜 세운 또다른 동력은 깊은 절망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꿈이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성공해 얻은 부로 재단법인 ‘꿈을 현실로’를 만들어 제2, 제3의 차지혁이 나오고록 하는 것이다.

“3년내 국내 검색광고 시장에서 최고봉에 오르고 향후에는 세계적인 IT 리딩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50대에 ‘디지털 미소년’를 자처하는 차지혁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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