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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錢쟁ⓩ 박찬욱, 족보없는 영화, 시네마테크

“영화를 어깨너머로 배워 ‘족보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마련돼야 한다.”

박찬욱 감독의 말이다. 15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련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식 및 기자회견장에서 박 감독은 이같이 밝힌 뒤 “거대 도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다는 것은 수치”라고 토로했다.

이 자리에는 정윤철·최동훈·이명세·봉준호·윤제균·류승완·김지운 감독 등이 함께 했다. 봉 감독 역시 “월세·전셋집에 살아봐 나만의 보금자리(시네마테크 전용관)가 없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처지를 공감한다”면서 “없는 게 없는 서울에 없는 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라고 꼬집었다. 정 감독은 “시에 시청, 신도들에게 교회·절이 있듯 영화인들에게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감독은 “극장은 서점,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도서관”이라며 “보다 유익하고 공익적 역할을 담당하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파리·뉴욕·런던·베를린·도쿄 등 세계적인 도시에는 고전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문화와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위용을 자랑한다. 한국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갖춘 도시로 부산이 유일하다.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지난 해 10주년을 맞았다. 그간 이곳을 지원해온 부산시는 내년에는 필름수장고와 전용상영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다는 건 박·봉 감독 등이 토로했듯 ‘수치’이다.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경쟁력에 크나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일례로 유명 여행정보 사이트 ‘론리플래닛’은 지난 해 서울을 세계 최악의 도시 9곳 가운데 3위로 꼽았다. ‘형편없이 반복적으로 뻗은 도로들과 소련식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그곳은 심각한 환경오염 속에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다. 숨막힐 정도로 특징이 없는 이곳이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그 이유를 들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정 감독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8년에 영화인들의 의견을 수용,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을 위해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도 200억원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훗날 ‘딴 짓’을 하고, 위원장이 교체되면서 건립안이 무산되고 말았다.

기자회견에서 추진위는 “서울시가 필수적인 문화 인프라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을 제안했다. “정치인·행정관료·기업인들도 만나겠다”면서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10주년을 맞는 2012년까지 시네마테크 건립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과 설계안이 나오고 대망의 첫 삽을 뜰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박쥐> <마더> <해운대> <타짜> <추격자> <미쓰 홍당무> 등의 필름을 서울아트시네마에 기증했다. 스폰지는 <도쿄!> 등 9편, 퍼시픽엔터테인먼트는 <바다를 보라> 등 19편을 기증했다. 영화인들의 이같은 의지가 들불처럼 확산되고, 서울시와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정·관·재계 등이 적극적으로 화답하기를 기대해 본다.

<배장수기자 cam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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