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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AN이 만난 사람]안중선,기인? 도사? 나는 잡놈이라오

안중선 동양칡서연구소장

‘천기누설’ 등 30여 권의 저자, ‘구통도가’ 창시자, 칡서 화가, 사진작가, 차력사…. 하루 한 끼 식사에 줄커피와 줄담배. 단, 술은 입에도 안 댄다. 안중선 동양칡서연구소장(64)을 뭐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 ‘기인’ ‘도사’…? 본인은 “잡놈”이란다. “천하를 ‘잡’고자 한 ‘놈’이 정작 잡은 칡붓의 의미는 우리 안의 바람(hope)”이란다. 안중선 소장의 삶과 꿈.

안중선 동양칡서연구소장

# 바람의 운명을 지닌 사나이

안중선 소장은 "어릴 때부터 남과 '다른' 능력으로 관심과 따돌림을 동시에 받았다"고 했다. "수시로 형극(荊棘)과 같은 고통이 이유없이 다가왔고 어쩔 수 없는 돌발적인 행동과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말 벼락'에 사람들이 나를 멀리해 언제나 외로웠다"고 토로했다.

안 소장은 나중에서야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다름'이 싫어 초등학교 때 집을 나오면서 시작된 떠돌이 생활은 성인이 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월남전이 발발하자 무작정 참전했다. 미국에서 종교심리학을 배우다가 영화판에서 일을 돕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미술을 접하고, 이탈리아에서 성악과 조각을 배웠다. 영혼 몸살을 앓으며 터키·이집트·인도 등을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17년을 바람처럼 떠돈 뒤에서야 찾은 고국은 여전히 군사정권 치하였다. 그는 많이 변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오랜 방랑생활로 그의 몸은 피폐한 상태였고 다시금 처절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인연으로 배우게 된 서예에 다시 미쳤고, 소용돌이 같은 운명에 대한 의문의 갈증을 풀고자 역학에 몰두했다. 

"어느 날부터 알 수 없는 힘이 온 몸을 휘감으면서 신필(神筆)이 쏟아져 나왔어요.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들을 꾸기 시작했고, 그 어떤 힘에 이끌려 뇌리로 쏟아져 내리는 것들을 꼬박 21일간 자동기술을 하듯 써냈어요."

이 책이 바로 1985년 빛을 본 비술의 운명학 '천기누설'(天氣漏泄)의 원전인 '도가경전'이다. 안 소장은 "천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이었고 질곡 같은 바람의 운명을 겪어야 했다"고 읊조렸다. "대학가에서 사주를 봐주고 강의를 했다"면서 "사이비 취급을 받는 등 갖은 수모를 당했지만 운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학술로 인정받아 '구통도가(九通道家) 전국 대학생 연합 구도회'라는 학술단체도 만들어졌다"고 회고했다. 

'천기누설'을 시작으로 안 소장은 역학의 대중화에 몰두했다. 저서가 '비전역경' '천기누설 야화' '천기누설 X파일' '건강백세 생명술' '불로장생 기공술' '천상어록' '운명 체인지 업' '인생 물어가는 길' 등 30여 권에 달한다. 대학·기업 등에서 2000여 차례 강의를 했고,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 등에 지부를 둔 사주카페 원조 '천기누설 카페'를 80년대에 열었다. 2000년 개설한 '토탈오즈스타닷컴'(www.totalozstar.com)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다.

안 소장은 "인생이란 모를수록 좋고 알수록 좋다"며 "그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살아내라는 엄숙한 명령(生命), 뭇 생명들의 운명에 희망을 부채질하는 바람 같은 나의 운명을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 화선지에 '바람'을 담아내다

"천하를 잡고자 했으니 천하 잡놈 아니겠느냐"는 안 소장. 그가 요즘 실제로 잡은 것은 바로 '칡붓'이다. 그는 칡붓을 통해 흰 화선지 위에 검은 춤사위를 그려낸다. 칡서화다. 

칡서화는 칡뿌리를 빻아 만든 붓으로 그린 먹그림이다. 흑백은 양음(陽陰), 즉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언제나 시종(始終)이 없는 공생의 미학과 밤낮이 도는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네의 인생 역시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 바로 희망을 접하는 지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담아낸다. 

"칡서화는 갑골문자와 상형문자를 모태로 한 그림으로 분체(糞體)라고 하는 특별한 서법으로 그려요. 모든 생명들의 바람(hope)을 담아내고 이루길 기원합니다."

안 소장이 칡서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열여덟 살 때라 하니 이미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온 세상을 속속들이 접하는 바람(wind)이 맺어준 인연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중국인을 통해 칡서의 세계와 신관(神官)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 칡서와 갑골문자를 배우게 되었다. 

습득 과정은 혹독했다. 계룡산·속리산에 입산, 칡을 캐서 붓을 만들고 참숯을 굽고 갈아 먹을 만드는 과정부터 배웠다. 고사리와 묵만 먹으면서 하루에 10여 시간씩 습득했다. 

안 소장은 "칡으로 맞아 피고름이 맺히는 나날의 연속이었으나 아픈 줄도 모르고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며 회상했다. "그렇게 열 달이 넘게 익힌 칡서를 잠시의 공백은 있었지만 꾸준히 연마해 왔다"고 덧붙였다.

안 소장은 이제 때가 되었다며 지난 해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30여 회의 전시회를 갖는 등 칡서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머잖아 칡서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안 소장의 칡서는 특히 일본에서 인기다. 올해에도 일본 전시회 일정이 지난 3월20일부터 오는 11월20일까지 짧게는 6일, 길게는 1개월씩 잡혀 있다. 

안 소장은 "세상 사람에게는 모두 제 나름의 온전한 에너지가 있다"면서 "칡서에 담은 원초적 야전적 기운생동으로 인간관계와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잠자고 있는 에너지를 깨워 살아있는 수복강령의 기를 다시 찾게 해주고 싶다"고 역설했다. "칡서는 영험한 풍수 인테리어"라고 강조했다. 바람(wind)의 운명을 겪고 난 그는 세상 사람의 바람(hope)을 기원하는 운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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