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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 꿈과 열정, 그리고 쏠쏠한 재미가 있다

'K3리그'하면 축구에 별 관심없는 일반인은 흔히 '동네축구'나 '동호인 축구'쯤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선수와 서포터스의 꿈과 열정만큼은 프로인 K리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과 재정속에서도 '축구'라는 공통분모로 뭉친 그들의 무대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감동과 희노애락이 있는 '축구 다큐멘터리'다. 

지난 1일 시즌 전패를 기록 중인 신생팀 춘천시민구단(춘천FC)-전남영광FC의 이른바 '꼴찌 더비'가 열린 강원도 춘천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을 찾았다. 

▲K3만의 재미가 있다

오후 3시 경기를 앞두고 춘천FC 관계자들은 부산했다. 팀의 후원업체 A보드 광고판을 설치하고 경기장 곳곳을 정리하는 등 세심한 준비에 나섰다.

춘천FC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스 '맥' 회원 20여명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분위기를 돋웠다.

관중석 한 켠에는 경기 전날 구단 버스를 이용해 7시간의 긴 여정을 거쳐 춘천을 찾은 영광FC를 응원하기 위해 춘천지역의 영광향우회 회원이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고향팀 응원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수백명의 팬이 가족 단위로 통닭이나 김밥 등 먹을거리를 싸들고 경기장을 찾아 응원했다. 관중이 많지 않아 K리그나 A매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반 관중이 귀빈석을 차지하는 호사(?)도 누렸다. 

춘천FC 홈경기 때마다 무료로 장내 아나운서를 맡은 안경철씨(40)는 흥겹고 우렁차면서도 애교섞인 응원메시지로 관중의 귀를 즐겁게 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후보자들도 경기장을 찾아 얼굴을 알리고 한 표를 호소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춘천FC의 든든한 후원자인 김현식 단장(55)은 경기를 앞두고 "이번에도 첫 승에 실패하면 나부터 삭발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막내 더비·꼴찌 더비

춘천FC

올 초 창단한 홈팀 춘천FC는 9개팀씩 각각 A·B조로 나눠 치러지는 K3리그 B조 소속으로, 5경기를 치러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5전 전패 중이다. 마찬지로 시즌 첫 출전한 영광FC도 시즌 6경기를 치르는 동안 1승은커녕 단 1골도 뽑지못했다.

역사적인 창단 첫 승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막내 더비'를 벌이게 된 양팀의 맞대결은 시종 긴장감이 흘렀다.

전반 영광FC가 원정에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첫 골을 터뜨리며 창단 첫 승에 한 발짝 다가서는 듯 했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춘천FC는 후반 중반 동점골을 뽑은데 이어 연이어 연속골을 뽑아 2-1 역전에 성공했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홈에서 창단 첫승을 따낸 춘천FC 선수와 서포터스, 팀 관계자는 얼싸안고 환호한 반면, 시즌 7전 전패한 영광FC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삭발을 면한 춘천FC의 김 단장과 전호철(55) 후원회 회장은 경기 뒤 선수단과 서포터스에 돼지갈비 회식자리를 마련했고, 아쉽게 첫 승을 놓친 영광FC는 영광향우회 회원들이 저녁식사로 위로했다. 

▲축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K3 선수들 대부분은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경기에 나선다.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은 K3보다 한 단계 높은 내셔널리그에 진출하는게 꿈이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 선수들은 오직 축구가 좋아서다. 

선수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춘천FC의 경우 중국요리집 사장·태권도 사범·공무원·축구지도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축구 사랑'으로 뭉쳤다. 

플레잉 코치인 이상민(38·회사원)에 이어 최고참인 이종묵(37)은 철도공무원으로 이날 야간근무 때문에 저녁 식사 자리에도 참석못하고 경기후 곧바로 직장으로 향했다.

특히 주전 미드필더인 김대룡(22)은 재일교포 3세로, 한국에서 축구하고 싶어 테스트를 받고 춘천FC에 입단해 지역에서 학원강사를 하며 선수로 뛰고 있다.

구단 운영비는 시의 지원과 기업체 후원(현금·현물), 그리고 김 단장을 위주로 하는 임원들의 후원비로 채워진다.

타 지역에서 온 선수들을 위해 김 단장이 개인 소유의 주택을 내놔 10여명 정도가 숙소생활을 한다.

일주일에 두 차례 야간 훈련을 하는 춘천FC는 훈련 수당으로 회당 2만원씩을 선수에게 지급하고, 홈 경기 출전 수당 7만원(원정 10만원), 승리 수당 5만원을 준다. 

프로 선수들과 비교도 안되는 금액이지만 춘천FC의 경우 다른 팀에 비하면 수당도 환경도 좋은 편이라는 것이 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 단장은 "당장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한 성적 지상주의에 빠지고 싶지도 않다"며 "춘천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좋은 성적으로 FA컵 출전권을 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춘천FC와 더불어 K리그 강원FC의 춘천 홈 구장이기도 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 중앙 입구에는 강원FC 선수단의 단체사진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춘천FC 선수들은 지금은 K3지만 훗날 그 사진속에 자신이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그리며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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