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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치킨호크 리스트’를 만들자

전쟁영화 ‘블랙호크 다운’에 부시의 얼굴을 합성해 ‘치킨호크 다운’이라고 쓴 패러디 사진의 모습.

요즘 한국에서 군 면제 정치인이 화제다.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라 군 면제 정치인이 있다. 바로 ‘치킨호크’(Chickenhawk)다. ‘겁쟁이’를 뜻하는 닭(치킨)과 전쟁에서 강경파를 뜻하는 매파(호크)를 합친 말이다. 

치킨호크가 처음 정계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 앤드류 제이콥스 전 의원이 이른바 ‘제이콥스 리스트’를 터뜨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 정치인 상당수가 베트남전 확전을 주장하던 강경파 공화당 의원이다. 그는 “남의 아들은 전쟁터로 보내면서 자신들은 군대에 안가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안락의자 장군님(Armchair general)”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40여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치킨호크’ 논쟁이 다시 부활했다. 야당인 민주당이 이라크, 아프간 전쟁의 주역인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을 ‘치킨호크 두목’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5만7000명의 미국 젊은이들이 강제징집 돼 죽던 시절, 부시는 아버지의 ‘빽’으로 최전선 대신 안전한 본토 주방위군으로 갔다는 의혹이 일었다. 체니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입대 영장을 5번이나 받았으면서 한 번도 입대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행불 체니’다. 

이에 대해 부시측은 “성실하게 군 복무했다”며 근무기록과 치과진료 기록을 공개했는데, 이에 대해 야당 측은 이렇게 비꼬았다. 

“우리 대통령 후보는 군대에서 훈장을 받았는데, 당신네는 치과진료를 받았군요.” 

체니 부통령의 해명은 더욱 걸작이었다. 

“그땐 군대보다 더 중요한 할일이 있었다.” 

이 해명이 야당에게 두고두고 안주거리로 씹혔음은 물론이다. 

‘화씨 911’로 유명한 인기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한술 더 떠 ‘치킨호크 입대 캠페인’을 펼쳤다. 부시와 체니 같은 군 면제 정치인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에게 ‘입대청원 편지’ 보내기 운동을 벌인 것이다. “치킨호크를 모아 특수부대를 만들어 전쟁터에 보내자.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외쳤다.

한국도 요즘 연평도 사건을 맞아 ‘군 면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군 면제 정치인이 선거로 심판받을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유권자들은 다 잊는다. 2004년 미국에서도 ‘땡보직’ 부시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존 케리 후보를 물리치고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군 면제 정치인’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심판해야 할까. 우선 이들이 이름 병역상태, 그리고 이들이 한 말과 행동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마이클 무어처럼 ‘신의 아들 리스트’를 만들어 다음 선거까지 고이 간직해두자. 정치인 개개인이 전쟁과 평화에 어떤 발언을 했는지 기억하고 평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쟁터가 아닌 선거판에선 군필자보다 ‘치킨호크’가 강하다는 법칙은 이제 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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