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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독백]하정우 “내가 무섭다고? 내 일상은 코미디”

미안하다. 오해했다. <추격자>의 연쇄살인마 지영민의 잔향이 너무 짙었을까? 하정우를 만나기 전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추격자>, <비스티 보이즈>, <평행이론> 속의 웃음 따위는 모를 것 같은 표정없는 얼굴, 살기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할 생각에 겁이 났다. 하정우가 <국가대표>, <멋진 하루>, <구미호 가족>에서 코믹하고, 따뜻한 연기도 했다는 걸 잠시 잊었었다. 실제로 만난 하정우는 “내 일상은 코미디”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개그맨보다 더 개그맨 같은, 웃느라 주름이 늘어나는 것도 잊게 만드는 그런 남자였다. 

■진지남? 개그는 내 삶의 힘이죠=저 웃긴 남자에요. 의외라고요? 영화는 진지한 걸 찍지만 일상은 코미디죠. 오히려 필모그래피가 개그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전혀 안 웃길 것 같은 애가 개그를 하니 더 재미있나 봐요. 개그에 있어서는 나름 자부심도 있어요. 슬랩스틱에도 강한데 주로 스탠딩 개그, 말장난을 즐기죠. 내 개그에 빠진 사람들은 물 마시는 모습만 보고도 웃어요. 너무 웃어서 숨을 못 쉰 사람도 있고, 같이 밥을 먹다가 토하고 온 매니저도 있어요.(홍보직원에 따르면 2008년 ‘비스티 보이즈’를 할 때 실제로 목격한 일이라고 한다)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는…. 바로 내가 추구하는 웃음이죠. 개그는 내 삶에 있어서 진짜 중요한 부분이에요. 흥미로운 건 희극적인 템포가 연기에도 쓰인다는 거죠.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영화 표현에서도 디테일의 차이가 설득력을 갖게 하더라고요. 내가 본능적으로 연기한다고요? 모르시는 말씀. 난 연기할 때는 치밀하게 계산해서 해요. 관객들한테는 얼마나 준비했는지가 눈에 보이거든요. 가끔 연기를 하다 보면 뜨거운 느낌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배우는 대중예술가인지라 모든 에너지를 풀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풀곤 하죠. 하루에 3작품을 그릴 때도 있고, 한 작품을 두 달 동안 붙잡기도 해요. 그림은 삶의 균형을 맞춰준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에 참 좋아요. 

■‘개고생’했다는 말은 듣고싶지 않아요=사람들이 ‘진짜 고생했겠다’, ‘얼마나 힘들었냐’라고 하는데 난 그 말을 듣는 게 불편해요. 부끄러운 거죠. 내가 이만큼 고생했으니 봐달라고 내 세우는 건 아마추어적인 거잖아요? 그냥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고생했구나라고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황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영화죠. 스릴러의 구조를 갖춘 데다 반전의 연속이라 관객이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편하게 볼 수 있겠더라고요. 주의깊게 보지 않아도 시작부터 잡아당길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추격자> 나홍진 감독이랑 김윤석 형, 내가 또 만나서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하더라고요. 부담도 되는데 판단은 관객들한테 맡겨야죠. 그래도 윤석이 형이랑은 두 작품이나 같이 하면서 진짜 친해졌어요. 

황해

특히 <황해>를 찍으면서는 인간 대 인간으로 고마움을 많이 느꼈죠. 연기호흡은 이제 말할 단계가 지났고, 윤석이 형은 그냥 사촌형 같아요. 큰아빠 아들 같은 느낌이랄까? 형한테 맨날 쫓기는 입장이라 힘들긴 한데 그래도 애가 어른을 쫓는 거보다 어른이 애를 쫓는 게 보기 좋지 않겠어요.(웃음) 요즘엔 가끔 ‘하정우’, ‘김윤석’을 검색해서 누가 더 기사가 많이 났나 확인해요. 아직까지는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이제 형 말고 여배우랑도 작업해야죠. 전도연씨도, 고현정씨도 좋았는데…. 전 누구랑 어울릴까요? 차기작은 <의뢰인>이라는 영화인데 또 남자랑 하네요. 따뜻한 연변남자였던 <황해>랑은 정반대인 ‘차도남’이 될테니 기대해주세요. 

<글 이미혜기자·사진 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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