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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미국인들도 틀리는 미국 국가

제45회 수퍼볼 경기에 앞서 미국 국가를 부르고 있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는 이날 가사를 틀리는 실수를 범했다. 로이터I연합뉴스

지난 6일 제45회 수퍼볼 경기가 열리는 텍사스 알링턴의 카우보이 스타디움. 10만명 관객의 눈동자가 단 한사람에게 몰렸다. 장내 아나운서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래미상 5회 수상에 빛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미국 국가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길레라가 특유의 힘찬 성량으로 미국 국가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지켜봤던…오잉????” 

앗!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무려 1억명이 지켜보는 미국 최고 스포츠경기에서 미국 최고의 가수가 무려 애국가를 ‘삑사리’ 낸 것이다. 가사 넷째줄인 “저 성벽 너머로 찬란히 빛난다”를 둘째줄인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지켜봤던”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당황한 아길레라는 실수를 만회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사태는 수습이 안돼 박자를 놓치고 노래를 망치고 말았다. 

아길레라의 ‘삑사리’는 즉시 ‘유튜브’ ‘트위터’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고, 결국 그녀는 “노래에 집중하다보니 실수했다. 나의 애국심을 모두가 알아달라”고 사과해야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아길레라를 탓하는 네티즌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노래 잘 불렀으면 됐지 뭘.” “솔직히 가슴을 손에 얹고 물어봐라. 너희들 중에 미국 국가 제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 얼마나 되냐?”

문제는 이 질문에 “저요”하고 대답할 사람이 미국에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연예인들만 해도 그렇다. 코미디언 로잔느 바는 1990년 풋볼 경기에서 역시 미국 국가를 ‘삑사리’ 냈다가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까지 “창피하다”는 말을 듣는 망신을 당했다. 재즈가수 메이시 그레이 역시 2001년 풋볼 경기에서 애국가를 잘못 불렀다가 그 자리에서 관객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아길레라 역시 사전에 동료들에게 “제발 애국가를 리믹스하면 안돼”라는 충고(?)를 들었음에도 사고를 쳤으니, ‘애국가 삑사리’는 새삼 미국인들의 고질병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국가차원 통계도 있다. 200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명중 2명(69%)이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의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남은 1명(31%)도 가사를 3절까지 제대로 적지 못했다. 이 설문조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정부가 2006년 ‘국가 제대로 배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대표에 영부인 로라 부시가 취임했다. 1년간 ‘애국가 배우기 버스’가 전국을 일주했고, 방문하는 곳마다 ‘애국가 노래자랑’을 벌여서 가사를 안 틀리고 잘 부르는 ‘1등’에게 상금 1000달러(약 110만원)를 수여했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미했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애국가를 잘 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200년 전에 작사된 애국가 가사가 너무 오래되어 일반인들이 어렵다는 점을 들수 있다. 그동안 많은 정치인들과 교육자들이 “시대에 맞는 애국가를 만들자” “애국가도 현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전통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도 못 부르는 미국 애국가를 보면서 과연 전통 고수만이 정말 좋은 것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아울러 그래도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한국 애국가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 <재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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