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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의 오늘 점심] 어지러운 심신 개운하게 씻어주는 엄마표 ‘청국장’

“우다다다타타타타타타!”

녀석은 요란한 소리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큼직한 뚝배기에는 손톱만한 콩, 넙데데한 두부, 초록색 호박, 청양초와 홍초가 마구마구 서로를 문대고 있다. 뚝배기가 이기나 가스불이 이기나 시합이라도 했을까? 테이블로 올라온 청국장은 여전히 지글지글 끓고 있다.

양푼에 곤드레밥을 옮기고 국자로 청국장을 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0.5초. 충분히 올렸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부족해 보이는 것은 밥알이 청국장 국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더 국물과 건더기를 올리고 설렁설렁 비벼댄다. 밥과 청국장콩과 두부와 호박 조각을 숟가락에 올려 한 입에 집어 넣는다. 무엇이 씹히는지 어떻게 넘어가는지 느낄 틈도 없다.

강원도 정선 가는 국도변에 있는 정원광장의 청국장 이야기다. 이 집의 청국장은 콕콕 쏘는 청국장 고유의 냄새를 잘 살려놓았다. 이 끓다 못해 튀겨지며 나오는 정원광장의 청국장과 곤드레나물밥의 조합은 내 몸이 평생 잊지 못하고 있는 환상의 밥상이다.

엇그제 영주에 다녀왔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소수서원의 잘 생긴 소나무님들, 수도리전통마을 사내들의 무뚝뚝한 얼굴들을 마주치며 이즈음의 경박함이 다소 씻어 내려간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씻어낼 것은 부박한 마음 뿐이 아니었다. 인체에 나쁘니, 괜찮으니 하며 시끄러운 중국발 황사나 일본발 방사능과 그것들보다 더 무서운 온갖 공해물질들도 이 맑은 공기와 깊은 솔숲에서 털어버리고 싶었다.

풍기역전에 있는 한결청국장을 찾은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이 집 청국장의 특징은 은은한 향과 심심한 맛이라 할 수 있다. 식당을 만든 분은 지금 사장의 할머니다. 김포 사람인 할머니는 결혼 후 풍기로 이주했는데, 청국장 뜨는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집에서만 먹기 아까우니 밥집 하나 차리시라는 권유도 자주 받게 되었다. 그녀가 개업 결심을 하고 처음 한 일이 레시피 기록이었다. 그 레시피가 이 집안을 청국장으로 크게 일어서게 한 보물공책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40년 전 식당을 열었을 때만 하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영주사람들에게 청국장이란 요상하고 생소한 메뉴였고, 그 깊은 맛에 그만 푹 빠져버린 손님들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식당은 대박을 맞았다.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레시피를 물려주고 돌아가셨고, 그 어머니가 이어온 솜씨는 언제부턴가 아들과 며느리의 몫이 되었다. 해서 3대째 청국장맛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청나라 된장에서 유래한 청국장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발효 과정에서 생긴 납두균과 비타민1이 활동을 시작하는데, 납두균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분해해 피를 다소나마 맑게 해주고, 비타민B1은 간에 쌓인 독성을 녹여버린다. 제대로 만든 청국장 한 뚝배기로 잠시나마 혼탁한 심신 정화를 시도해 봄은 어떨지.

<여행작가 겸 맛 칼럼니스트·‘죽기전에 꼭 먹어봐야할 소문난 맛’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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