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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함’ 수원과 맞짱, 포천시민구단 그들은

낮에는 근무, 밤에는 훈련. 꿈을 향해 달리는 챌린저스리그(K3) 선수들의 고된 일상이다. 챌린저스리그 구단 중 최초로 FA컵 32강에 진출해 K리그 강호 수원 삼성과 16강 진출을 다투게 된 포천시민구단 선수들이 매일 밤 포천시민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기적’을 꿈꾸고 있다. 포천|김창길기자

어둑어둑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 경기도 포천종합운동장. 어깨에 가방을 둘러맨 선수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고된 일과 탓에 축 처진 어깨가 무거워 보였지만 얼굴 표정은 기대와 설레임이 가득했다.

국내 챌린저스리그(K3) 구단 최초로 FA컵 32강에 진출한 포천시민축구단(구단주:서장원 포천시장) 선수들이다. 이들은 오는 18일 K리그 명문클럽 수원 삼성을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인다.

낮엔 각자 직장생활과 공익근무를 하다 밤에 모여 훈련하는 포천 선수들의 일상과 꿈, 그리고 ‘거함’ 수원전을 앞둔 각오를 들어봤다.

낮엔 막일, 밤엔 축구

2008년 출범한 포천시민구단은 현재 25명의 선수들로 구성됐다. 대부분 고등학교나 대학, 실업팀에서 활동하다, 프로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실업팀에서 퇴출된 선수들이다. 이들은 또 군 문제가 해결안돼 연고지의 방위산업체나 공익근무로 군 복무를 대체하면서 퇴근 후 공을 찬다.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선수들은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행여 잔일이나 야근이 있으면 매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하는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한다. 숙소가 있지만 비좁아 선수들 절반 가량은 따로 방을 얻어 생활한다. 최근 FC서울 지휘봉을 내려놓은 황보관 전 감독과 유공 입단 동기인 이수식(46) 감독은 “선수들이 회사에 일이 쌓이면 주말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힘든 직장생활을 한 뒤 훈련까지 해야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매일 볼 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장 오태환(27)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선수들이 제대로 쉴 시간이 없다”며 “주말에 치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무척 힘들다. 하지만 축구가 하고 싶고, 더 좋은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꿈 하나로 모두 고통을 참아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챌린저스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일도 버거운 현실에서 이들을 축구로 이끄는 힘을 뭘까. 꿈과 희망이다. 축구는 하고 싶지만 당장 갈 곳이 없거나 군 문제에 부딪혀 ‘내일’을 기약하며 꿈을 향해 달리는, 말 그대로 도전자들의 정신이다.

이수식감독

설움 속에서 찾은 희망

포천시민구단은 초라하게 출범했다. 그간 설움도 많이 받았다. 리그에 데뷔한 2008년 전반기까지 16개 팀중 15위였을만큼 오합지졸이었다. 고교나 대학 팀에게 연습경기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게 다반사다.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간청한 뒤에야 겨우 한 게임을 뛸 수 있는 신세였다. 설움은 오기를 키웠다. 창단 때부터 팀 운영의 전반적인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이광덕(42) 본부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동네축구’ 밖에 안된다는 생각에 선수 영입 등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성과는 금새 나타났다. 리그 꼴찌에서 창단 이듬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이다.

이 본부장은 “우리는 성적을 위해 축구만 잘하는 선수를 뽑지 않는다. 꿈을 잃지않는 선수들에게 희망의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고 구단 운영의 취지를 밝혔다.

포천시민구단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인성’이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경기장에서 폭력, 거친 항의 등 매너없는 언행으로 퇴장 당하면 바로 팀에서도 퇴출이다.

구단의 운영 예산은 시가 절반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지역 기업체 후원과 자체적인 마케팅, 후원 구좌 등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구단은 시가 더 주겠다고 해도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생력과 자립도를 키우기 위한 정신에서 그랬다.

그들이 꿈꾸는 그날, 수원이 떤다

포천 선수들은 요즘 설레임과 두려움속에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FA컵 32강 대진 추첨에서 K리그 최고의 구단 수원과 맞붙게 됐기 때문이다.

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지난해 이어 두 번째 FA컵 출전권을 따낸 포천은 대회 1,2라운드에서 대학축구 강호 고려대와 동국대를 각각 4-1, 3-1로 완파하고 챌린저스리그 팀 중 처음으로 32강 문턱을 넘어섰다.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프로와 맞붙는 FA컵은 포천 선수들에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못지않은 ‘꿈의 무대’다.

두려운 상대지만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다. 사실 부담은 ‘잘해야 본전’인 수원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수식 감독은 “추억 삼아 나가지는 않겠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공격적으로 재미있는 경기를 운영해 보겠다. 이번 계기로 챌린저스리그에 대한 축구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장 오태환은 “지금은 도전자의 입장에서 뛰지만 언젠가는 한 팀에서 또한 라이벌로 뛰고 싶은 게 선수들의 바램이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포천의 왼쪽 풀백 신옥진((24)은 “수원의 오른쪽 공격수 박종진이 중학교 때 함께 운동했던 친한 친구다. 최근 전화를 걸어 경기 때 내 쪽으로 오면 다칠거다고 잔뜩 겁을 줬다”며 웃었다.

사실 포천과 수원은 모든 면에서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포천은 많지않은 승리 수당에 하루 1만원의 훈련비가 지급된다. 구단의 1년 예산도 비할 바 못된다.

이 본부장은 “우리팀의 1년 예산은 3억원을 넘지 못하지만 수원은 300억원 수준으로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300억원을 버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수원으로서는 ‘생각도 하기 싫은’ 망신이고, 포천에게는 ‘생각만 해도 좋은’ 반란이다. 과연 5월18일 오후 7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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