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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하, 순탄치 못했던 안타까운 젊음….

인기그룹 SG워너비 출신의 가수 채동하(30)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평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그는 27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애끓는 탄식이 곳곳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그의 모친은 아들의 주검앞에 끝내 오열하며 목놓아 울었고, SG워너비를 포함해 솔비, 하하, KCM 등 수많은 동료 스타들이 애도했다.

채동하의 삶은 화려한 외형과 달리 결코 순탄치 않았다. 측근들 역시 소심한 성격과 우울증 증세 등을 늘상 걱정해온 바 있다.

<스포츠경향>과 전화 통화한 연예계 한 관계자는 “어릴 적 심장병 등으로 큰 수술을 받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긴 것으로 안다”면서 “그가 꿋꿋이 지내기를 바랐지만 결국 주위의 바람을 외면했다”며 슬퍼했다.

지난 2002년 솔로 가수로 데뷔한 그는 음반이 실패하면서 한 차례 낙담했다. 활동 중에도 건강 상태가 그의 발목을 수 차례 잡았다. 당시에도 허리 등의 수술을 받으며 1집 활동에 애를 먹었다.

2004년 김용준, 김진호와 SG워너비를 결성 어릴 적 가난과 첫 도전의 실패를 딛고 그는 한국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우뚝 서며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2004년 모든 신인상을 휩쓸었고, 2005~2007년 3년 연속으로 그해 음반 최다 판매량 가수로 등극하며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가요계에 ‘소몰이 창법’을 유행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멤버간의 이렇다할 불화는 없었다. 당시의 한 매니저는 “때때로 아파 오는 몸 탓이었는지 늘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고, 주위 가수들과 쌓을 수 있는 친분도 애써 멀리하는 경향이 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2008년 팀을 돌연 탈퇴했다. 인기 절정의 팀에서 무난한 활동이 보장됐지만, 그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는 대신 혼자만의 음악적 삶을 지향했다.

2009년 그가 내놓은 솔로 앨범 <에세이> 재킷에는 그가 10여년간 직접 쓴 일기 글이 빼곡히 등장한다. 우울증에 시달려왔고, 늘 외톨이였다는 고백도 눈에 띈다.

“난 어려서부터 남들과 달랐다. 슈퍼맨, 우주인, 난 이런 거랑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6살, 작은 몸에 새겨진 수술 자국…. 슈퍼맨이 되는 순간이었다. 남들처럼 잘 뛰지도, 잘 놀지도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등을 토닥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나는 긴 숨을 이어갔다….”

2009년 만났던 그는 “사귀다 헤어진 연인과 다시 잘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는 등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이었지만, 각종 악재가 다시 그를 흔들었다. 악화된 목디스크로 모처럼 벼렀던 솔로 활동을 중단해야했다. 또 앨범 발매 직전엔 그의 첫 매니저 장모씨가 경남 통영의 한 모텔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을 택한 뜻밖의 사건도 지켜봤다. 그는 당시에도 3일 내내 빈소를 지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해 소속사를 옮긴 뒤 다시 솔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움츠려드는 모습이었다. 채동하와 잘 알고 지냈던 한 연예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북돋고자 노력한 것으로 알지만 허사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사건을 수사중인 은평경찰서는 “27일 오전 11시께 자택 옷방 행거에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사망해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외부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집에는 양주병, 여행가방, 약봉지가 있었다”고 밝혔다. 약봉지에는 인근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처방받은 8일치 분의 약이 들어 있었고, 6일치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현재 아들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모친이 부검을 요구해 이르면 내주 초 부검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정신과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27일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었던 채동하는 26일부터 돌연 연락이 두절됐다. 국내 소속사가 채동하를 찾고자 직원 최모씨를 자택으로 보냈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당시 최씨는 119구급대와 함께 집안에 들어갔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가 취해졌다. 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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