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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장효조의 발자취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이 지난 1987년 삼성의 주장을 맡아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고 트로피를 들고 있다. 이 해에 뛰어난 활약으로 MVP까지 수상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연합뉴스

장효조 전 삼성 2군 감독은 30년 한국야구가 낳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양준혁(은퇴)·김현수(두산) 등에게 붙여졌던 ‘타격의 달인’,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의 원조가 바로 그였다. 프로야구 초창기를 호령했던 장효조지만 그의 타격 능력만큼은 지금도 ‘최고’라고 회자될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다.

1973·1974년 봉황기 고교야구대회에서 타격상과 최다안타상을 수상하며 대구상고를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뒤 1983년 삼성의 파란 유니폼을 입고 프로야구에 데뷔한 장효조는 첫 해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바뀐 만큼 프로 적응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을 비웃듯 92경기에서 타율 3할6푼9리(1위) 18홈런(공동 3위) 117안타(공동 1위) 62타점(공동 3위) 22도루(4위) 장타율 6할1푼8리(1위) 출루율 4할7푼5리(1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천재성을 증명했다. 그의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나 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프로진출이 1년 늦춰진 바람에 ‘신인답지 않은 신인’이라는 이유로 신인상을 받지는 못하고 타율 4위 박종훈(OB)에게 양보했다.

장효조는 한 차원 다른 타격 기술에 선구안까지 갖춘 무결점 교타자였다.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볼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함께 삼성에서 활약했던 SK 이만수 감독 대행은 장효조를 추억하며 “나도, 이승엽도, 양준혁도 장효조 선배는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장효조는 타격에 관한 한 아직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92시즌 뒤 롯데에서 은퇴, 10시즌 통산 타율 3할3푼1리 1009안타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면서 남긴 3년 연속(85·86·87) 타격왕과 통산 네차례 타격왕(83·85·86·87), 역대 통산 최고타율(0.331)은 지금껏 누구도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전설’로 만드는건 이런 천재성만이 아니다. 장효조는 근성과 열정 가득한 연습벌레로 유명했다. 프로에서 나무 배트에 적응하기 위해 쉴 새없이 방망이를 휘둘렀고, 경기 내용이 좋지 않은 날도 숙소에서 배트를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남다른 승부욕을 보여줬다. 1990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2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장효조는 이듬해 36살의 나이에 타율을 3할4푼7리까지 끌어올리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라운드에서는 빼어난 야구 실력을 보여줬던 장효조지만 야구인생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자기 생각이 확실하고 굽히지 않는 성격 탓에 구단과 마찰이 없지 않았다. 1988시즌이 끝난 뒤에는 구단과 연봉 문제로 갈등을 빚자 시즌 뒤 고향팀 삼성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된 아픔도 있었다. 또 1987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기도 했지만 뛰어난 성적과 비교하면 큰 상과도 인연이 없었다.

◇장효조 프로필

■생년월일 1956년 7월6일 ■신체조건 175㎝ 78㎏ ■포지션 외야수(좌투좌타)

■학력 및 경력 삼덕초-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포항제철(79)-경리단(80∼82)삼성(83∼88)-롯데(89∼92)-롯데 코치(93∼98)-삼성 코치(00)-삼성 스카우트(00∼09)-삼성 2군 코치(10)-삼성 2군 감독(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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