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 사람]반전 드라마를 만드는 의대 출신 요리사 이상민 셰프

장금이는 수랏간 상궁 자리가 권력도 아닌데 ‘헤게머니’ 싸움에 밀려 끝내 내쳐졌다. 이후 그녀의 삶은 질곡이었지만 끝내 의녀가 돼 ‘대장금’이란 찬사를 얻었다. 사극의 한장면으로 그녀가 감내한 픽션은 마치 넌픽션 마냥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줬다. 현실 속에서 ‘대장금’의 삶을 거꾸로 되짚으며, 가시 밭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의대를 ‘때려치우고’ 시쳇말로 권력과는 거리 먼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 이가 있다. ‘노보텔 앰배서더강남’(이하 노보텔)에서 일하는 요리사 이상민씨가 그런 사람이다.

촬영을 위해 레스토랑에 앉은 이상민씨는 촌각의 호사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일과 중 ‘노닥거림’도 오랜만이라고. 10시간 이상 서서 일해야 하기에 요리 실력만큼 체력도 관건이다. 그녀는 하루 400∼500개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며 체력을 기르고 있다.

# 노래 오디션은 백청강! 요리 오디션은 이상민!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다. 무명가수 백청강·허각이 스타덤에 올랐고, <나는 가수다>를 통해 기성 가수 임재범·김범수·박정현 등은 스타가 됐다. 오디션의 강점은 실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개그맨 박성광이 외쳤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결국 제대로 된 일등조차 우리 곁에 없었다는 역설이 된다. 따지고 보면 이제야 오디션을 통해 ‘제대로 된’ 일등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연예인들에게만 일등이 존재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일등이 되기위해 사회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다. 노보텔의 이상민 셰프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녀 역시 TV 오디션 출신이다. 2006년 SBS <도전 성공시대-내일은 요리왕>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개 경쟁으로 일반인 요리왕을 뽑았다. 이씨는 거침없는 입담과 빼어난 실력으로 1500대 1의 경쟁을 뚫고 1등에 올랐다. 실력 하나는 타고났다는 얘기다.

“방송에서 1등을 하고나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았죠. 의대를 제멋대로 때려치우고, 가출해서길거리 노점이나 차렸던 딸을 곱게 볼 일이 없잖아요. 한국관광대학에 들어가 요리사의 길로 접어든 못미덥던 딸이 방송 주최 요리대회에서 1등을 했으니, 얼마나 기쁘셨겠어요.”

이후 요리 인생에 탄력도 붙었다. 한국관광대학을 나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7성급 호텔 에미리트 팰리스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했다. 월급 20만원의 ‘꼬마’ 요리사로 인종 차별적 언사를 묵묵히 버티며 요리를 배웠다. 이듬해 스위스로 건너가 언어 장벽과 싸웠다. 스위스 호텔·관광경영대학교인 IMI에서 조리경영학사를 땄다. 현지 호텔 경험을 살려, 2010년 1월 노보텔에 들어왔다. 그동안 고생하며 실력을 쌓은 덕인지 2~3년 걸리는 쿡 서드(3rd) 생활을 1년만에 끝내고 쿡 세컨드(2nd)가 됐다.

# 대장금 멘토는 한상궁! 이상민 멘토는 제이미 올리버!

누구에게나 롤 모델은 있다. 그마저도 없다면 인생 계획에 꿈설계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씨도 꿈이 없는 삶이었다. 한양대 의대 신입생(00학번)인 그녀는 꿈이 없었다. 의대를 다니던 오빠를 따라 부모님의 뜻대로 택한 길이었다. 출발부터 삐꺽거리던 의대 생활은 본과 1학년이던 2002년 4월 자퇴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엄마 도장 몰래 파서 자퇴서를 냈죠. 같은 의대 선배이던 오빠에게 통보를 하고 ‘무단가출’을 했죠. 이후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액세서리 노점을 시작했고, 외곽 도시에서는 가게를 낼 정도로 대박(?) 났죠. 월 400만~500만원의 수익을 올렸으니까요. 그런데 장사란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동네 불량배의 등살에 가게를 접고 2004년 ‘백수’로 돌아왔어요.”

돈을 많이 벌어봤지만, 그것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 때 케이블TV 요리채널에서 우연히 보게된 세계적인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에게 시쳇말로 ‘꽂혔다.’ 그녀에게도 꿈이 생긴 것이다. 대장금의 인생 험로에 한상궁이라는 인생 멘토가 있었듯, 이씨에게도 바라봐야 할 별이 생긴 것이다. 그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요리를 따라해 보며 멘토의 그림자를 좇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리를 전공하기 위해 2005년 한국관광대학 조리학과에 들어갔다.

“지금도 외국 경험을 더 쌓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요. 더 많이 배워서 요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이씨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양식 조리 분야다. 고기류 식자재를 많이 다루다 보니 크고 무거워 여자들이 다루기 쉽지 않다. 커다란 칼을 들고 요리를 해야 하기에 이 분야에 여자 요리사는 흔하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가지 않는 길이기에 그녀의 도전 욕심은 더 커진 듯 하다.

의사가 메스를 들고 생명을 구하듯, 요리사는 칼을 들고 생명을 지킨다. 대장금의 길이 평탄대로는 아니었듯, 이씨가 가는 길 역시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까지는 예고편! 수많은 난관이 불보듯 뻔한 길에서, 그녀만의 뚝심으로 돌파해낼 넌픽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이 개봉박두를 기다리고 있다.

이상민씨의 ‘10만 양병설’

이상민씨는 요리나 말 한마디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다. 이런 성격 탓에 하고 다니는 모습도 ‘남자답다.’ 이런 모습은 간혹 오해를 불러온다. 노보텔에 처음 왔을 때 여자 탈의실을 이용하다가 남자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합기도에 유도, 복싱, 마라톤까지 배울 정도로 운동마니아다. 하지만 이런 ‘마초적’ 털털함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이 모습은 동료를 하나로 묶는 구심이 되기도 한다. ‘장금이’ 곁에 조력자들이 많았듯, 그녀 역시 ‘10만 원군’을 양산하는 일에 매일 밤을 불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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