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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삼성 이승엽 “류현진, 직구로 한판 붙자”

삼성 이승엽(36)은 아시아신기록인 시즌 56호 홈런을 치고 3루를 돌며 펄쩍 뛰어오르는 사진을 휴대전화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야구선수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003년 그 날이 아니다. 이승엽은 2002년 LG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말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을 쳐내 삼성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을 때를 야구인생에서 가장 짜릿했던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본으로 떠난지 8년만에 돌아와 새해를 맞은 이승엽이 또 한번 품은 꿈도 우승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한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삼성이란 열차에 자연스럽게 탑승하는 게 첫 번째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연말 뿐 아니라 새해 첫 날도 어김없이 경산볼파크에서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린 이승엽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2012년을 위한 여러 그림을 그렸다. 그 중 한가지는 자신이 한국을 떠난 시간에 급부상한 국내 특급투수들과 멋진 승부를 펼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승엽은 그 중에서도 괴물 왼손투수 류현진(25·한화)과 대결을 첫 손에 꼽았다

“한일 통산 600홈런도 욕심” 삼성 이승엽이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마친 뒤 자신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저장해놓은 2003년 56호 홈런 달성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은 본지 이석우 기자가 찍어 이승엽에게 선물한 것이다. 경산|이석우 기자

◇“류현진과 대결? 직구 승부 좋다”

이승엽이 윤석민(KIA) 김광현(SK) 등 여러 투수들을 거론하면서도 류현진과 대결을 가장 흥미로워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 당시의 진한 인상 때문이다.

“류현진 하면 올림픽 결승전부터 생각난다. 쿠바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타자들한테 대뜸 하는 소리가 ‘오늘 3점만 내달라’는 것이었다. 2008년이면 류현진이 몇살 때인가. 국가를 대표하는 게임, 더구나 올림픽 금메달이 걸린 경기인데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아니 그렇게 당돌한지 깜짝 놀랐다. 속으로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했는데 앞으로 타석에서 자주 만나게 됐다.”

이승엽은 류현진이 직구뿐 아니라 체인지업 등 변화구에 제구까지 뛰어난 투수라는 것을 잘 안다. 이에 올시즌 류현진이 그와 승부에서 갖고 나올 투구 패턴을 예상해달라고 하자 농담을 곁들이며 힘과 힘이 맞붙는 직구 승부를 기대했다.

“직구 던지지 않겠나. 힘으로 직구 승부할 것이다. 변화구 하겠나. 자존심이 있는데…, 류현진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볼카운트 1-3, 한국야구가 달라졌다”

이승엽은 지난 8년간 일본 땅에 머물렀지만 한국야구를 시야 밖에 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오사카를 홈으로 오릭스에서 뛴 이승엽은 “오사카에 한국방송이 잘 나온다. 한국프로야구 생중계뿐 아니라, 가령 ‘롯데의 재미있던 경기’ 같은 하이라이트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이승엽은 곧바로 변화와 발전을 말했다. “투수들 공이 대체로 엄청 빨라졌다. 제구도 정교해졌다. 일본투수들이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면에서는 조금 위안을 받다가도 한국야구를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투구 패턴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게 이승엽의 설명이다. “일본에 가기 전만 해도 볼카운트 1-3, 0-2 같은 이른바 배팅 카운트에선 직구 승부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나를 두고 노림수가 좋다고 했는데 노림수가 좋다기보다는 결과가 나와있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야구를 보니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달라진 패턴 가운데 몸쪽 승부와 변화구 구사 타이밍이 가장 눈에 띈다고 했다. “초구에 몸쪽 높은 직구가 오는가 하면, 1-3 같은 타자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변화구 빈도가 높더라. 예상이 쉽지 않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리그 홈런수가 줄어든 것도 투수들이 발전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승엽이 ○○을 해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승엽은 복귀 첫 시즌 목표로 100타점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남긴 성적표를 감안하면 아주 겸손한 내용이다. 이승엽은 시즌 56홈런을 때린 2003년 무려 144타점을 올렸다. 100타점을 넘어선 게 5시즌이나 된다.

그럼에도 100타점을 우선 목표로 잡은 데는 나름대로 배경이 있다. 이승엽은 “팀을 위해선 타점이 가장 중요한데 100타점을 올리면서 타율 2할5푼을 치는 타자는 거의 없다. 100타점을 올리면 타율도 2할8푼에서 3할은 쳐야한다. 100타점을 우선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승엽이 정작 원하는 목표는 우승이다. 빈칸을 채워달라는 물음에 지체없이 우승을 새겨넣었다. “운좋게도 어린 시절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났다. 시즌 홈런왕과 MVP도 5차례했다. 올해 한 시즌만 놓고 내 개인성적으로 이루고 싶은 건 사실 없다. 그 대신 2012시즌이 지난 뒤 ‘이승엽이 삼성이 우승하는 데 힘을 보탰구나’ 하는 그런 소리는 꼭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일 통산 600홈런을 향하여”

통산 성적을 향한 밑그림은 뚜렷하다. 국내프로야구 통산 2000안타를 채우는 게 우선 목표다. 이승엽은 “부상없이 5~6년 정도 더 뛰었으면 한다. 그러면 국내 통산 2000안타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승엽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국내리그에서 안타 1286개를 쳤다. “앞으로 6년을 더 잡을 때 시즌 평균 110~120개를 치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슬럼프도 찾아오겠지만 평균 페이스로 그 정도는 꾸준히 하고 싶다”고 했다.

이승엽은 국내에서 홈런 324개를 때린 뒤 일본에서 홈런 159개를 보탰다. 한일 통산 483개의 홈런을 때렸다. 한일 통산홈런 기록도 욕심이 나는 게 사실이다. “글쎄, 그 또한 매시즌 20개를 친다면 되는 것인데 6년을 건강히 뛴다면 할 수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다들 한국 응원문화 말씀하시던데”

이승엽은 야구팬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친근한 캐릭터다. 그에게 ‘국민타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끔 모르는 분이 나를 앞에 두고 ‘승엽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 그만큼 나를 친근하게 바라봐서 그러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다. 나에 대한 반가움 아니겠는가. 내가 그런 곳으로 돌아와 있다는 게 마음 편안하다.”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는 게 가슴 벅차다.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말연시에도 쉼표 없이 개인훈련을 이어갔지만 한국야구에 대한 기대가 안타 몇개, 홈런 몇개에만 담겨있진 않다.

국내프로야구 응원문화 변화도 그 중 하나. 이승엽은 “다들 응원문화가 달라진 걸 말씀하시더라. 실제 들어가면 어떨지 기대된다”며 개막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를 내놨다. 8년만에 찾게될 지방구장들도 마찬가지. “광주구장도 그렇고 대전구장도 그렇고 먹을거리로도 명소가 많은 곳이다. 예전 향수를 느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프리미어리그 열렬팬”

이승엽은 부인 이송정씨와 사이에 큰 아들 은혁(7)과 지난해 5월 얻은 둘째 아들 은엽이를 두고 있다. 셋째 출산 계획도 있다. “아내가 둘째 낳을 때 너무 고생을 해서 더 이상 낳지 말자고 했는데 최근 아기 엄마가 셋째를 갖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아기 엄마 몸만 괜찮다면 한번 낳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딸을 바라는게 이승엽의 속내다.

이승엽은 큰 아들을 만나면 축구선수로 변신해야한다고 한다. 지난해 말 시즌을 마친 뒤에도 귀가하면 아들 은혁이와 2시간 정도 축구를 하다가 컴컴할 때 집으로 들어가는 게 다반사였다. “은혁이가 얼마 전만 해도 야구를 좋아해 내가 뛰던 요미우리 선수들 이름도 줄줄이 외웠는데 요즘에는 틈만 나면 프리미어리그를 본다”고 했다. 그 나이 또래에도 속도감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매력을 이해하냐고 묻자 “아주 죽입니더”라며 시원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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