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정년퇴직 앞둔 영동선 ‘스위치백’ 열차

통리~도계역 국내유일 갈짓자 철길 구간

6월 솔안터널 개통되면 역사 뒤안길로

‘한국의 그랜드캐년’ 통리협곡 겨울 산악철도의 백미

스위치백(switchback)은 ‘자세를 반대로 바꾸다’라는 뜻이다. 가파른 산길을 넘기 위해 열차가 갈지(之)자로 이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구간에서 열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국내에서는 통리역(태백)과 도계역(삼척)을 잇는 영동선 철길이 유일하다. 정확히 말하면 흥전역에서 나한정역 사이 1.5㎞ 구간이다. 한데 오는 6월 솔안터널이 개통되면 이 구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탄광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 여행객들의 추억과 낭만을 싣고 달리던 열차가 기적을 울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통리협곡을 끼고 산자락 유순한 언저리를 뱀처럼 굽이치는 영동선 열차는 겨울철 산악열차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터널이 뚫리는 6월이면 이 모습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통리재(해발 720m)는 서울에서 영주를 거쳐 강릉까지 이어지는 영동선 열차가 태백산맥을 힘겹게 넘어가는 구간이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마치 ‘뱀이 똬리를 튼 모습’처럼 생겼다고 해서 강원도 사람들은 ‘때베이재’라고 부른다.

통리재를 사이에 둔 통리역(680m)과 도계역(245m)의 해발고도 차이는 435m. 경사가 급한 고개를 열차는 한 번에 넘지 못해 산자락을 지그재그로 오르고 내려야 한다. 이 구간이 바로 스위치백이다.

과거 산업 근대화의 심장이었던 통리역은 긴 역사만큼 아픔이 깊다. 1936년부터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마을사람들이 동원돼 목숨을 잃었기 때문. 이 때 만들어진 것이 강삭철도(incline)다. 통리역과 심포리역 구간의 급경사에 철로를 깔고 위쪽의 통리역에서 열차를 끌어올리고 내렸다.

통리역

당시 승객은 열차에서 내려 가파른 비탈을 걸어 올라야 했고, 고갯길은 오가는 이들로 늘 북적였다. 1963년 스위치백 구간과 38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예전의 모습은 찾기 힘들지만 지금도 통리역 앞에는 5일장이 열려 당시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통리역을 출발한 열차는 낙동정맥의 험준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여럿 거쳐 심포리역에서부터 속도를 늦춘다. 내리막 철로를 느릿하게 달리다 흥전역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다. 여기서부터 뒷걸음질 치는 열차는 나한정역에 이르러서야 제 방향을 잡고 도계로 향한다.

흥전역

나한정역은 흥전역에서 내려온 열차와 도계에서 올라온 열차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교차지점. 도계에서 나한정역과 흥전역, 심포리역을 거쳐 통리역으로 향하는 열차는 오르막이 힘겨운 듯 숨소리를 거칠게 내뿜는다.

38번 국도와 드문드문 마주치는 철로는 통리협곡을 끼고 산허리 유순한 언저리를 뱀처럼 굽이친다. 겨울철 산악철도의 백미로 꼽히는 것도 이 협곡 때문이다. 깊이가 300여m에 이르는 통리협곡은 생성과정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비슷해 ‘한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린다.

통리협곡

30m짜리 미인폭포를 품고 있는 협곡은 태백과 삼척의 시계가 갈리는 통리삼거리에서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마주친다. 행정구역상 삼척에 속하지만 태백 통리(통동)에서 더 가깝다. 통리재 7부 능선에 자리한 고원관광휴게소에 이르면 멀리 도계읍이 한눈에 잡히고 우측으로 붉은 때깔의 절벽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백병산(해발 1289m)에서 발원한 오십천(五十川) 물줄기가 억겁의 세월 동안 빚어놓은 작품이다.

38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오십천은 왼쪽으로 매봉산, 덕항산, 지극산, 오른쪽으로 우포산, 육백산, 응봉산, 사금산, 백병산 사이를 깊게 가르며 59.5㎞를 내달려 동해와 몸을 섞는다.

반세기 동안 주민과 관광객, 무연탄을 실어 날랐던 열차는 이제 곧 사라진다. 태백시 동백산역에서 삼척시 도계역까지 루프식(나선형)의 솔안터널(16.2㎞)이 뚫리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솔안터널은 국내에서 가장 길다. 동백산역과 도계역 사이 16개 터널이 하나로 통일되는 셈이다. 터널이 개통되면 통리역과 심포리역, 흥전역, 나한정역은 스위치백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대신 이곳에 스위치백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나한정역에서 다시 통리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니 철로변에 빨간색 지붕을 얹은 집 한 채가 유독 눈길을 끈다. 철로와 오십천을 양쪽으로 끼고 거대한 바위 위에 들어선 모양새가 도드라진다. 언뜻 보면 집으로 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국도변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샛길이 철로와 나란히 뚫려 있다. 이 길이 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통로다.

나한정역 김영주 할머니 집

‘과연 이런 집에 사람이 살까’ 싶어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 한 분이 외지인을 반긴다. 심포리 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다 13년 전에 이곳으로 내려왔다는 김영주 할머니(82)다. 젊어서 남편을 잃은 김 할머니는 당시 200만원에 집을 얻어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시에서 나오는 10여만원의 보조금이 할머니의 한 달 생활비. 그나마 작은꽃노인복지센터에서 하루에 1개의 도시락을 지원해주고, 1주일에 3번 3시간씩 찾아오는 요양보호사가 가사 일을 돕고 말벗이 돼 주는 게 유일한 낙이란다.

철로를 끼고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린 흥전1리 13반에는 현재 5가구가 담을 맞대고 살고 있다. 최고령자는 이삼춘 할머니(86).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묻자 김 할머니는 “가끔 오십천에서 닭똥 냄새가 나고, 들고 나는 길이 변변하지 못해 연탄을 나르는 일이 고된 것만 빼면 살만하다”고 하신다.

새 길이 뚫리고 리조트가 들어서면 마을에는 생기가 돌게 마련. 하지만 이곳에 추억을 묻은 이들은 섭섭함이 적지 않다.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해, 어느새 통리협곡을 훑고 지나온 어둠이 짙게 깔린다. 무심한 세월의 격변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십천 물소리는 세차기만 하다.

■찾아가는 길:서울→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제천IC→38번 국도→영월→정선→태백→황지자유시장 앞 삼거리에서 삼척 도계 방향 좌회전→통리역

상장동 남부마을 벽화

■주변 볼거리:상장동 남부마을은 광산촌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벽화마을이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 속의 개 ‘만복이’를 비롯해 70여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귀네미마을

일명 ‘배추고도’로 불리는 귀네미마을에는 총 11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서 장관이다. 이외에 태백산, 함백산, 단종비각, 석탄박물관, 검룡소, 용연동굴, 황지연못, 구문소, 삼수령, 추전역, 고생대자연사박물관 등이 있다.

연화반점 짜장면

■맛집:통리역 인근에 자리한 연화반점(033-552-8359)은 짜장면, 한서방칼국수(033-554-3300)는 닭칼국수가 맛있고 초막고갈두(033-553-7388)는 고등어·갈치찜이 유명하다. 이외에 평양냉면(냉면, 033-581-0101), 정원(코다리순대, 033-553-6444), 태백한우골(한우, 033-554-4599), 허생원먹거리(감자수제비, 033-552-5788), 승소닭갈비(닭갈비, 033-553-0708), 산골식당(033-553-7676), 너와집(033-553-9922) 등

태백산눈축제

■축제:태백시는 27일~2월5일까지 태백산도립공원과 오투리조트, 황지연못, 태백시내 일원에서 ‘2012 태백산눈축제’를 연다. 올해로 19회를 맞아 ‘눈, 사랑, 그리고 환희’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는 눈조각을 예년보다 2배(총 64점) 확대하고, 시베리안 허스키가 이끄는 개썰매를 체험할 수 있다. 또 비닐썰매와 스노캔들만들기, 캐릭터 이색 퍼포먼스, 장기자랑, 콘서트 등의 행사가 열리고 축제장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김치삼겹살구이가 올해도 등장한다. 특히 황지연못과 중앙로를 비롯한 태백 도심 곳곳이 수십만개의 LED 전구로 장식돼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숙박:오투리조트(033-580-7000), 태백고원자연휴양림(033-582-7238), 태백산민박촌(033-553-7460), 청뜨리(033-581-5371), 바디너와집(033-552-7585) 등

■문의: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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