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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년 이은하, 재즈가수가 된 사연

22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재즈클럽 ‘천년 동안도’.

검정색 드레스를 갖춰 입은 1980년대 가수왕 이은하(51)는 가슴에 손을 포갠 채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렇게 긴장할 줄 미처 몰랐다”던 그는 신인 시절 무렵 지었을 법한 수줍은 미소로 주위를 찬찬히 훑었다.

이윽고 흘러나온 묵직한 더블베이스의 리듬은 근사한 이은하의 목소리, 피아노 선율 등과 차례로 섞였다. ‘너를 못잊어’ ‘미스티 블루’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진한 재즈의 향기가 객석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내년 데뷔 40주년을 바라보는 관록의 가수 이은하는 그렇게 재즈 가수로서의 첫 무대를 열었다. 그는 자신을 “재즈 신인 가수”라고 불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고도 했다.

1973년 13세의 나이로 노래 ‘님마중’을 불러 히트를 기록한 그는 그 길로 곧장 대중가수가 됐다. ‘밤차’ ‘아리송해’ ‘봄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돌이키지마’ 등 부르는 노래마다 인기를 끌며 한국 가요계의 대표 디바가 됐다.

돌이켜보면 그의 스펙트럼은 원래부터 넓었다. 그의 노래엔 R&B도, 디스코나 팝 장르도 있었다. 20대엔 ‘이은하와 호랑이’라는 록그룹을 결성한 적도 있다.

이번 일은 재즈 평론가 겸 프로듀서 남무성씨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이은하는 4년 전인 2007년 색소폰의 대가인 이정식의 새 앨범 쇼케이스 장에 참석해 노래를 불렀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남무성씨가 이를 유심히 기억했다. 3년여가 흐른 지난해 남씨는 이은하에게 재즈 음반을 제작하자고 제의했다.

22일 이은하의 첫 무대를 돕고 있던 남씨는 “목소리엔 ‘솔’(soul)이 있지 않냐”며 “이은하씨와 재즈는 잘 들어맞는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익숙치 않은 영역을 들어서기가 그리 쉬울 리 있을까. 이은하는 “결정을 하는데도 숙고했고, 이후에도 번뇌가 있었다”고 그간의 과정을 회상했다. 이은하는 “과거 재즈라는 개념 자체가 ‘어렵다’ 혹은 ‘부담스럽다’였다”며 “재즈라는 숙제를 받아든 뒤에서야 비로소 재즈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즈, 매력이 뭐던가요?”

“재즈, 그건 그냥 ‘삶’이던데요. 사는 게 슬플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듯이 재즈도 그러하더라고요. 자연스러웠고, 평화로웠고….”

그는 “이제 좀 빠른 노래는 후배들에게 맡겨 놓고, 어쿠스틱하고 내추럴한 음악을 부르려 한다”고 말했다.

이은하의 재즈 앨범 <마이 송 마이 재즈>에는 한국 재즈계의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연이어 보였다.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을 비롯해 이주한(트럼펫), 양준호(피아노) 등의 베테랑 연주자들이 사운드를 도왔다. 또 기타는 최우준, 베이스는 오정택과 최세열 김호철, 아코디언은 정태호, 퍼커션은 김정균, 드럼은 이도헌 김창훈 이길종 등의 실력 연주자가 맡았다. <나는 가수다>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장기호가 일부 트랙의 보컬디렉터로 참가했다. 신곡 ‘내노래’와 ‘내일도 어제처럼’의 작곡을 맡은 이주한은 인기 팝재즈그룹 윈터플레이의 리더이기도 하다.

이날 이은하의 변신을 지켜본 이들 중에는 과거 이은하에게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작곡해주었던 작곡가 원희명씨가 있었다. 자신의 노래가 재즈로 변해 나오자 “참 좋다”며 박수를 쳤다. ‘나성에 가면’을 불러 히트를 기록했던 중견 가수 권성희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같다”며 이은하를 응원했다.

앨범에는 총 11개의 재즈곡이 들어있다. 재즈로 옷을 갈아입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봄비’ ‘너를 못잊어’ 등의 노래를 비롯해, 스탠다드 재즈곡으로 널리 알려진 ‘마이 퍼니 발렌타인’ ‘미스티 블루’ 등이 앨범을 수놓았다.

이은하는 “재즈하기 정말 잘했고 더 하고 싶다”며 “앞으로 수년간은 재즈 전도사로 지낼 듯싶다”고 말했다. 그와 뮤지션들은 호흡이 맞았는지 이미 두번째 재즈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조만간 일본으로도 넘어가 재즈 가수로서 무대에 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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