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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만 95일! ‘아키에이지’에서는 무슨 일이?

"자원을 선점한 특정 세력이 중소 규모 집단과 새로 진입하는 후발 주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생태계의 흐름을 막아버리더군요."

재벌이 골목상권까지 진출해 서민들의 눈물을 빼고 있는 우리 경제 얘기가 아니다. 게임 사상 이례적으로 장장 95일간의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중인 엑스엘게임즈의 차세대 MMORPG <아키에이지> 속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아키에이지> 공성전

<아키에이지>는 구상 단계부터 '리얼 MMORPG'를 표방한 게임이다.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콘텐츠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이머가 직접 집과 마을, 성을 만들어 경제 및 정치 활동을 하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는 등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에 의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게이머들 사이의 관계 및 상호 작용에 의해 능동적이고 창발적인 게임 생태계가 얼마든지 가능해 진다는 얘기다. 게임내 '결혼'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테스트에 결혼 시스템이 아직 구현되지 않았음에도 유저들은 기존 시스템과 아이템을 활용해 자기들끼리 결혼식을 올리는 등 스스로 '가정'을 꾸려 개발자들을 놀라게 했다.

나무를 심는 '식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기존 MMORPG에는 없던 이 시스템은 당초 '자원 개념'으로 만들어졌지만 유저들은 다른 용도로도 이용하고 있다. 나무를 여러 겹으로 빼곡이 둘러 심어 마치 성벽처럼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나선 것. 개발자들이 미쳐 예상 못한 현상이라 현재의 시스템에선 나무를 베어 내는 것이 심는 것보다 어렵다보니 공격자들 에게는 원성의 대상이다. 당연히 이를 조정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쳐 수정되기도 했다.

쾌속정 항해

가능한 한 현실을 반영하도록 시스템이 구현된 탓에 실제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도 수두룩하다.

일대일 전투를 즐기는 유저가 있는가 하면, 집단을 만들어 몰려 다니며 패거리 전투에 몰입하는 유저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텃밭을 꾸미며 사는 일명 '귀농파'도 있고, 이런 곳만을 골라 수확물을 훔치는 유저도 존재한다.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맺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주인 유저의 농장 관리를 맡아 해주고 일정한 보호와 급료를 받는 경우다. 테스트에 참가한 한 게이머는 "아침에 접속해 농작물 수확이나 성벽 쌓기 등의 작업 지시를 내리면 하인들이 일을 마쳐놓는다"며 "게임내에서 실제 사회 같은 경제시스템이 돌아가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앞서 예로 든 '거대 자본의 약탈 경제'도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특정 시스템을 도입해도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과실을 거대 집단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방법은 놀랍게도 일종의 '위장 계열사'를 만드는 식이다. 거대 집단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중소 집단간 협력을 방해하기도 하고, 아예 싹을 자르기도 한다.

아키에이지

이와 관련 "약자에게 별도의 보상을 주는 방식은 대부분 무용지물이 됐다. 이보다는 거대 집단에게 보다 직접적인 페널티를 줘 흐름을 순환시키는 방법이 효과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는 개발팀 관계자의 말은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엑스엘게임즈 송수영 홍보팀장은 "장기간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개발진들도 예상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실제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가 열려있다는 점이 <아키에이지>만의 매력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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