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그 많던 ‘20대 여우(女優)'들은 어디로 갔을까.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속 이훤은 두 살 어린 허연우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산다. 실제로는 이훤을 연기한 김수현(24)이 허연우를 맡은 한가인보다 6살 어리다. 올해 서른인 한가인이 20대 초반의 허연우를 연기했다.

배우가 나이를 뛰어넘어 연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최근 드라마 속 '나이 역전'은 눈에 띄게 많다. 30대 여배우가 20대 남자 연기자와 비슷한 나이나 어린 연인을 맡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원(34)은 9살 어린 이승기와 MBC <더킹 투하츠>(21일 첫 방송)에서 호흡을 맞춘다. 두 사람은 각각 북한 공주와 남한 왕자가 돼 정략결혼을 한다. SBS 새 수목극 <옥탑방 왕세자>의 한지민(30)은 상대역 박유천보다 4살 많고, KBS 새 수목극 <적도의 남자>의 이보영(33)도 이준혁보다 5살이 많다.

안방극장에서 20대 여배우들이 주인공을 맡는 일은 점점 찾기 힘들어진다. 20대 때부터 주연을 한 30대 여배우들이 여전히 타이틀롤이다.

제작사 '푸른여름콘텐츠홀딩스'의 김태원 대표는 "예전엔 '저 배우는 누구야' 할 정도의 20대 신인 여배우가 주인공을 맡기도 했고, 심지어 20대가 30대를 연기했는데 요즘은 이런 경우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30대 여배우들이 주연을 꿰차다 보니, 시놉시스에서 20대 중·후반으로 설정돼있던 여주인공의 나이가 캐스팅 후에 30대로 수정되기도 한다.

관계자들은 20대 여배우들이 주인공에서 밀려난 이유로 시청률 위주의 드라마 제작환경을 꼽았다.

ㄱ매니지먼트사의 이사는 "드라마의 외주제작 비율이 높아지다 보니 스타 캐스팅에 대한 의존이 심해졌다. 방송사에서 편성을 따려면 '시청률 보증수표' 검증을 받은, 경험 많은 30대 여배우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에서 자체 제작할 때는 생짜 신인이라도 '꽂히면' (주인공으로) 갔는데 실적경쟁을 해야 하는 외주제작사들은 모험을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20대 여배우가 소속된 ㄴ매니지먼트사의 대표는 "3~4년 전부터 20대 신인 여배우들이 할 만한 역할을 걸그룹 멤버들이 꿰찼다. 걸그룹 멤버가 출연하면 화제성, 홍보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연기의 깊이가 떨어지다 보니 1회성 출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캐스팅에서 밀려난 20대 여배우들은 연기 경험을 쌓고 주연으로 성장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30대 남자 배우들은 영화 출연으로 바쁜데, 30대 여배우들이 할만 한 영화는 많지 않아 드라마 속 '30대 여배우-20대 남자배우' 조합이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또 현실에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많아져 이런 조합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한류 시장을 겨냥한 드라마 제작이 보편화되면서 20대 여배우들이 성장할 기회는 더 좁아지고 있다.

김태원 대표는 "현재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일본 시장을 겨냥한다. 일본 시청자들은 남자주인공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젊은 여배우가 중요한 배역을 맡기 힘들다.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선 투자에 비해 수익을 내기 힘들어 20대 신인 여배우를 키우기를 주저하고, 연예인 지망생들도 연기에만 매달리기 보다 걸그룹으로 데뷔한 뒤 연기에 도전하는 방법을 선호해 20대 여배우 기근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