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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의 연성계, 엔씨와 넥슨

<스티브 잡스 자서전>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IT업계의 라이벌인 잡스와 빌 게이츠의 관계를 ‘연성계(連星系)’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두 별이 중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궤도가 서로 얽히는 것을 가리키는 천문학 용어다. 아이작슨은 인류 역사에도 두 거성 간의 경쟁의식으로 한 시대가 형성되는 상황을 볼 수 있다며, 1970년대말 시작된 PC시대의 첫 30년 동안 두 사람의 연성계가 세상을 바꿔왔다고 말한다.

엔씨소프트(엔씨)와 넥슨은 한국 게임산업계의 연성계라 할 수 있다. 게임업계의 두 거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각자 강력한 영역을 구축한 채 영향을 주고받으며 게임산업을 이끌어 왔다. 여기에다 불과 40대의 나이에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의 부호’에 이름을 올리며 ‘자본주의 성공신화’가 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45)와 김정주 NXC대표(44)의 스토리는 두 회사를 더욱 맛깔나는 라이벌 관계로 만드는 양념이 되기에 충분하다.

서울대와 KAIST 선후배인 두 사람은 평소 ‘형님’ ‘동생’하는 사이이자 ‘평생을 같이할 친구’로 여긴다고 한다. 김택진 대표는 김정주 대표를 “내가 아는 한 가장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김정주 대표는 김택진 대표를 “내가 직접 본 사람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왼쪽)와 김정주 NXC 대표

그러나 애송이 시절부터 교류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의 길이 확연히 달랐던 잡스와 게이츠처럼 엔씨와 넥슨이 지금까지 걸어 온 길도 뚜렷하게 궤도를 달리한다.

먼저 엔씨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명가다.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등 일련의 게임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여기에 차기작인 <블레이드앤소울> <길드워2> <리니지이터널> 등을 더하면 가히 ‘MMORPG의 제국’으로 불릴만 하다. 이에 비해 넥슨은 캐주얼의 강자다. <카트라이더>와 <메이플스토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기는 ‘국민게임’이고, <바람의 나라>나 <마비노기>같은 MMORPG 마저도 캐주얼 색채가 강하다. 경쾌함과 친근함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넥슨의 강점이다.

엔씨소프트를 대표하는 게임 <블레이드&소울>.

물론 두 회사가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엔씨는 <드래고니카> <펀치몬스터>로 캐주얼을, 넥슨은 100억을 들인 블록버스터 <제라>와 <SP1> 등으로 정통 MMORPG 시장을 노크했지만 쓴 잔만 들이켜야 했다. 이미 두 회사의 게임 포털을 방문하는 유저의 색깔이 하이엔드 MMORPG와 캐주얼로 굳어진 탓이 컸다.

두 회사는 경영 방식도 차이를 보인다. 넥슨은 수차례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등 킬러 콘텐츠를 얻으며 매출 1조원대 회사로 덩치를 키웠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라인업을 구축해 강력한 경쟁력을 갖게 됐다. 이에 비해 엔씨는 개발부터 서비스(퍼블리싱)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담당하는 시스템을 통해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노하우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잡스의 경영방식인 ‘엔드 투 엔드’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다.

넥슨의 카트라이더

양사 직원들은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먼저 엔씨소프트 윤진원 홍보팀장은 “넥슨은 게임이 다양한 계층에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일조했다”며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넥슨의 기여는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반면 넥슨 최현우 홍보실장은 “엔씨는 한국 온라인 게임을 업그레이드 시킨 주역”이라며 “특히 업계의 맏형으로 해온 많은 역할에 한국 게임산업계 전체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두 회사의 궤도는 어디서 다시 얽히게 될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해야 하는 게 둘의 운명이다.

최근 엔씨는 엔트리브소프트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엔트리브는 캐주얼과 스포츠 장르에 전문성을 갖춘 업체로 엔씨로서는 꿈에 그리던 영토확장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넥슨도 최근 전세계 16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샤이야>를 인수하며 MMORPG 게임을 강화했다.

홍보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넥슨은 19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파트너십 체결을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창원을 연고로 한 엔씨 다이노스의 지역 라이벌이 롯데임을 감안하면 이번 파트너십은 의미심장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엔씨와 넥슨의 연성계가 온라인 게임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업계와 게이머들의 눈은 두 회사의 행보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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