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인구단’ 풋살대표팀을 아시나요

파주 NFC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에게만 특권이 주어지는 한국축구의 성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최근 이 곳을 낯선 이들이 점령했다. 축구팬들에게 알려진 얼굴은 하나도 없다. 출신도 직업도 각양각색인 그야말로 ‘외인구단’이다.

이름만 들어도 아직 낯선 풋살대표팀이 그 주인공이다.

이창환 감독이 이끄는 풋살대표팀이 지난 21일부터 파주 NFC를 접수(?)했다. 지난해 11월 이 곳에 풋살전용구장이 지어지면서 처음으로 최신식 시설이 갖춰진 NFC 생활을 경험하게 됐다. 풋살대표팀은 국제대회가 있을 때만 ‘번개소집’을 해왔고 그 때마다 떠돌이로 전국 실내체육관을 전전했다.

풋살 국가대표팀 훈련.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이 감독은 “꿈만 같다. 충북 보은과 경기도 용인 등 지역 실내체육관을 떠돌았는데 이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각급 대표팀 중에서도 ‘아웃사이더’였던 그들의 좌절과 도전, 꿈, 그리고 좌충우돌 대표팀 생활을 엿봤다.

■‘좌충우돌’ 파주 생활기

선수들에게 파주 NFC 생활은 호기심과 즐거움 그 자체다. 처음 이 곳에서 소집된 날 본관 1층에 장식된 김용식·이회택·차범근 등 역대 한국축구 영웅들의 사진을 보고 “우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국밥’으로 끼니를 때웠던 예전을 생각하며 화려한 식당 메뉴만 보고도 입이 쩍 벌어졌다. ‘혹시나 유명 축구스타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괜스레 복도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파주에는 현재 풋살대표팀 외에도 남자 U-16 청소년대표팀이 훈련 중이다. 평균 연령 27세인 풋살대표팀은 어린 동생들이 마냥 귀엽기만하다. 그래서 정숙과 절제를 강조하는 본관 복도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 동생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NFC 관계자는 “소집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거듭 단속했지만 아직은 모든 게 낯설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풋살 국가대표팀 훈련.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경호원·비보이 이력도 다양

‘외인구단’ 풋살대표팀의 경력과 이력도 다채롭다. 초·중·고 시절 공을 찼던 축구선수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비보이와 축구대표팀 경호원을 하다가 풋살대표팀에 발탁된 이도 있다. 재일교포도 2명 있다.

서대윤(23)은 U-17 청소년대표팀 시절 윤빛가람(성남)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는 건국대 시절 에이전트의 꾐에 빠져 J리그로 진출했다가 축구화를 벗게 됐다. 어린 나이에 이국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이 방황으로 이어졌고, 결국 흥미도 잃었다. 이후 풋살에 빠져들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골키퍼 이정우(31)는 축구대표팀 경호원 출신이다. 원래 모든 운동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풋살에 입문해 태크마크의 주인공이 됐다. 현재 두 아이의 아빠로 농약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비보이 출신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전국 비보이 배틀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는 최상진(30)이다. 그는 머리 스타일부터 예사롭지 않다. 염색한 파마머리에 옆만 밀어 묶어 눈에 확 들어온다. “비보이를 하면서 익힌 균형감각이 풋살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최상진은 “동호회를 통해 풋살의 매력에 빠졌는데 대표선수까지 됐다”고 기뻐했다.

풋살 국가대표 좌로부터 최상진, 김굉명, 서대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재일교포 출신 김굉명(29)은 K리그 경남FC와 태극 찬타부리FC에서 뛴 프로선수 출신이다. 축구지도자 C급 자격증도 있는 그는 “재일교포 사회에선 늘 한국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다. 풋살대표팀으로 태극마크를 단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은 중소기업 판매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생활체육협회 직원, 대학축구팀 코치도 있다.

■우리도 국가대표다

현재 풋살대표팀은 이 감독 등 코칭스태프 3명과 선수 24명으로 구성돼 있다. 합숙기간 동안 생존경쟁을 거쳐 이들 중 14명만 최종엔트리에 포함된다. 최종 멤버는 다음달 25일부터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풋살 챔피언십 2012 UAE’에 출전한다.

아시아 지역예선 2위로 AFC 본선에 오른 풋살팀은 16개 참가팀 가운데 4위 안에 드는 게 우선 목표다. 이렇게 되면 한국축구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풋살 월드컵 무대를 밟는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오는 11월 태국에서 열리는 풋살 월드컵은 엄연히 FIFA 주관 월드컵 대회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풋살 국가대표팀 훈련.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이 감독은 “예선부터 쉽지 않다. 조 2위까지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우리는 아시아 1위팀인 이란과 호주, 카타르와 한 조에 묶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도전의지가 강하다. 그는 “파주 입소 후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보수 없이 열정만으로 풋살을 하는 선수들이지만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며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선수들도 “직장을 그만 두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 제대로 사고치고 싶다”며 “풋살을 알리는 좋은 계기로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풋살 국가대표팀 훈련.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선진국은 이미 풋살 프로화

축구와 똑같이 발을 쓰는 풋살은 골키퍼를 포함해 5명이 하는 실내축구다. 국내에서는 인지도나 인기가 축구에 못 미치지만 스페인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프로리그가 활성화될 만큼 인기 스포츠로 전통을 자랑한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도 유소년팀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운영한다. 이란은 아시아에서 풋살 최강국에 꼽힌다.

국내도 2년전부터 축구협회 산하 풋살연맹이 창립돼 전문선수들의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7개팀이 매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 넉 달간 리그를 펼친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며 무급으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모처럼 호강하며 다음 달 대회 직전까지 파주에서 합숙하게 됐지만 이 것도 제대로 될 지 장담할 수 없다. 이 감독은은 “국내 리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과 주말에 열려 직장 눈치를 보며 유지할 수 있었다”며 “축구협회가 대표팀 훈련 공문을 선수들 직장에 보냈지만 언제까지 허락할 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풋살 국가대표 감독 이창환.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최근 재일교포 박경우가 직장에서 허락하지 않아 사흘만에 일본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어려운 생활 속에 직장문제가 맘에 걸리지만 선수들은 못다 이룬 꿈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