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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C네마]‘사라진’ 설경구의 옛 얼굴

배우 설경구가 좋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진희경에게 데이트 허락을 얻어내던 그 총각의 능청스러움이 좋았고, <박하사탕>에서 첫사랑에게 투박한 손을 들이밀며 “내 손 참 착하죠?”라고 묻던 그 청년의 슬픈 눈이 좋았다. 진심과 주먹만 믿고 돌진하던 형사 ‘강철중’의 꼴통 같은 동물성마저 좋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스크린 속 설경구에게선 점점 그 좋은 얼굴이 사라졌다. 아니 그의 연기를 제대로 담아낼 작품을 못 만난 건지도 모른다. <해운대> 같은 흥행작도 설경구를 구조하진 못했다. 비슷비슷한 남성 버디물에선 캐릭터의 차이점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소비되었다. 이혼과 재혼에서 생긴 본의 아닌 오해도, 그로 인해 싸늘해진 민심도 이미지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어쩌면 이제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배우 설경구의 옛 얼굴과 조우했다. 바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미스터 K>의 십 여분의 편집 영상에서 말이다.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부인에게 걸려온 전화는 꼭 받고 게다가 변명까지 해야 하는 생활 밀착형 스파이. 폭설이 쏟아지는 밤에 고장난 차를 밀고 오는 그 남자의 얼굴에는 설경구 특유의 투박한 낭만이 깃들여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리워 했던 그의 옛 얼굴이 눈길 위에 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주문이 이제야 이루어진 듯.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객들은 설경구의 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미스터 K>의 제작사 JK필름은 “애초 합의한 시나리오와 달리 대사가 빠진 이미지만 찍어왔다”며 11회 만에 촬영을 중단 시켰고 지난 한 달 동안 이명세 감독과 JK필름 간의 불협화음은 ‘위로금’ ‘저작권’ 등의 이슈로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영화는 <협상종결자>라는 제목으로 14일부터 다시 촬영을 재개한다. <해운대> 연출부 출신의 이승준 감독이 새로운 연출자로 기용되었다.

이제 다른 창작자의 손에 넘어간 <협상종결자>는 더 재미있고 더 대중적인 영화로 완성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의 ‘미스터 K’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제 아무리 똑같은 시나리오라도 다른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연출의 힘이요, 감독의 존재이유다. 영화 기자라는 직업의 아름다움은 먼저 본 영화를 더 많은 관객이 제대로 조우 할 수 있도록 바른 이정표를 세워주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관객들이 결코 볼 수 없을 미완성의 <미스터 K>를 본 것도, 잃어버린 설경구의 얼굴을 홀로 대면한 것도 전혀 즐겁지 않다. 사건의 시시비비는 언젠가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누구도 이명세가 어렵사리 포착한 설경구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게 제일 아깝고, 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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