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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패션왕’ 유아인 “찌질한 영걸이 허세연기 만족”

유아인(26)을 인터뷰하는 동안 몇 번이나 ‘영걸씨’ 라고 불렀다. 얼마전 종영한 SBS 드라마 <패션왕>에서 유아인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시시껄렁한 말을 내뱉고, 재벌 동창에게 돈을 꾸러 찾아가고, 알록달록한 옷에 ‘첨벙첨벙’ 팔자걸음을 걷는 ‘동대문 시장 짝퉁 사장 강영걸’을 연기했다. 유아인의 실체가 ‘찌질한 강영걸’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같은 열연에도 <패션왕>은 ‘패션이 취미고 밀당이 특기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쓰레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아류작’과 같은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 카페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강영걸’이 펜트하우스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린 결말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미리 알고 있었고, 죽는다는 설정에 대해 불만은 없어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치밀했느냐에 대해서는 ‘덜 만족’ 스럽지만요. 내 옆의 모든 사람들이 떠난 상태에서 엄청나게 큰 자쿠지 안에서 총에 맞아 죽는 외로움, ‘성공으로 향하던 욕망의 허무한 증발’은 잘 표현된 것 같아요.

-패션 얘기인 줄 알았더니, 슬픈 사랑 드라마였다. 영걸의 외로움에 공감했나.

“이 일 자체가 워낙 여러 사람과 부대끼면서도 동시에 고립되니까 외롭다는 말 하는 자체가 겸연쩍고 불필요하게 느껴져요. 예전에 외로움에 심취해 있었고 몸서리 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이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 애를 썼어요. 이 드라마에 나를 투영시킨건 아니고, 오직 영걸이만 생각했어요.

-주인공들이 드라마 내내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 같다. 더 오래 살았다면 ‘철없는’ 영걸이는 어떻게 됐을까.

“아주 주목할만한 대목이죠. 영걸이는 사랑이 뭔지 모르고 죽어요.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파국으로 치닫는. 성인 남녀들의 현실은 보통 이렇지 않나요? 이 지랄맞은 세상과 싸우며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퇴행해서 아기처럼 유치해지고”

-염세주의자처럼 보인다.

“저는 현실주의자예요. 그런데 현실이 ‘해피’하지만은 않다고 믿어요. 우리 드라마를 보고 해피한 결말을 얻고 싶어하던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일그러져 있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영걸이의 욕망이라는 ‘날것’을 보여주고, 그 욕망이 얼마나 유치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충분히 건드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중들은 너무나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질 못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들의 등장만 꿈꾸죠. 전 이 드라마를 통해 그 한계점을 무너뜨리고 싶었어요”

-연기에 허세가 들어있다는 평은 어땠나?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는 제가 의도한거예요. 영걸이가 허세적인 사람이니까요. 그 얘기 듣고 ‘내가 잘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전 영걸이의 허세가 귀여웠는데, 시청자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안보고 싶어하는 부분가지 매력 있게 연기했어야 하는건데, 그걸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드라마에서 ‘유아인 머리’ 를 크게 유행 시켰는데 왜 잘랐나.

“전 한가지 스타일을 세 달 이상 못해요. 순간순간 부정 속에 빠지는 스타일이지만,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긍정적이예요. 나에게 엄청난 실수를 한 사람이 있어도 앞에 앉아 어떻게든 얘기를 긍정적으로 풀려고 해요. 드라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다 쏟아넣었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더 커요. 작가는 이 세계의 ‘신’이고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가 배우의 운명이예요. 거기에서 배우가 갈증이 생기고 욕구가 생긴다면 다른 곳에서 풀어야죠. 어마어마한 창작욕이 있는 사람은 만족을 못하겠죠”

-결국 본인은 만족 못한다는 얘기 같은데?

“물론 연기는 계속 할거구요. 새로운 지점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또 나아갈 지점을요. 나오면 보세요. 그게 뭐가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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