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한국 바둑의 산실 ‘권갑용 도장’

“이 기쁨을 권갑용 사범님께 가장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승에서 중국의 신예 강자 당이페이 4단을 물리치고 생애 첫 우승(신예기전 제외)을 세계대회 타이틀로 장식한 백홍석 9단이 우승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 한 말이다.

이럴 경우 길러주신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이 믿는 신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9단은 스승 권갑용 8단(57)을 먼저 찾았다. 백9단에게 권8단은 부모 같은 스승이기 때문이다. 백9단뿐 아니라 한국바둑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그를 부모처럼 따른다.

자신의 도장에서 딸 권효진 5단과 함께 밝은 얼굴로 포즈를 취한 권갑용 8단(오른쪽).

현재 한국바둑은 ‘권갑용 도장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 박승문(6단)을 시작으로 지난해 입단한 김성진(초단)에 이르기까지 한국기원 소속 268명 중 46명이 그의 제자다. 6명 중 1명은 그의 제자라는 소리다. 그들의 단위를 모두 합치면 250단이 넘는다.

단지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박정환 이세돌 원성진 박영훈 최철한 백홍석 강동윤 조한승 김지석 이창호 등 한국랭킹 톱10 가운데 랭킹 4위 박영훈과 10위 이창호를 빼고 8명이 일명 ‘권도장’ 출신이다. 이중 이세돌 박정환 원성진 최철한 강동윤 백홍석 등 6명이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김지석·이영구·윤준상·윤영선 등 국내 기전 우승자까지 합치면 타이틀 홀더가 10명이다. 우승 횟수는 38회의 이세돌과 14회의 최철한을 비롯해 모두 85회(세계대회 22회)에 이른다. 한국 바둑계를 권도장 동문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권도장의 ‘세력’은 한국바둑계에만 뻗치고 있는 게 아니다. 대만의 1인자인 천스위엔(陳詩淵)과 그의 부인 장정핑(張正平)이 권도장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시훈과 김수준도 권도장에서 기력을 닦았다. 이 때문에 권8단은 세계바둑계에서 ‘티칭 프로 1위’로 꼽힌다.

그의 이런 ‘영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형제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는 홀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바둑을 배우는 데도 스승이 있을 리 없었다. 몇 달 동안 일을 해 모은 돈으로 청계천 헌책방에서 바둑책을 사서 읽는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입단한 뒤에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서른도 안 된 나이인 1983년에 일찌감치 승부사의 길을 접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학습태도가 불량한 학생은 가차 없이 내쫓아야 했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는 용기를 심어주며 자신이 거둬야 했다. 그러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리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아내(박옥주·55)의 고생이 없었으면 도장 운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아내가 아이들의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뒷바라지했다. 지금도 집에 아이들이 25명 정도 있는데, 그들을 돌보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아내에게 무조건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게 옛날을 돌아보는 그의 심정이다.

그런 그에게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자 3명을 꼽아 달라’고 하자 조심스레 이세돌·최철한·백홍석의 이름을 불렀다. 물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 말부터 했다.

“이세돌이야 세계1인자이니 당연한 것이고,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늘 밝은 모습으로 바둑공부를 한 최철한이나 몸이 약해 걱정을 많이 한 백홍석이 세계 정상을 정복해 정말 기쁘다”고 그는 말했다.

안타까움이 큰 제자로는 권오민과 윤혁을 꼽았다. 권오민은 이세돌과 겨룰 만큼의 기재를 타고났지만 사활 문제를 만들고 푸는 데 빠져 스스로 창의력을 죽였고, 윤혁은 최철한의 라이벌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제 기량을 다 펴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고 권8단은 전했다.

그는 한국바둑이 세계최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프로의 문호를 더욱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 입문의 문턱을 높힌 일본바둑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고, 프로기사를 많이 배출한 중국바둑이 한국바둑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세계바둑이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의 국제교류전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하루빨리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권8단은 방과후수업 등 바둑꿈나무 교육에는 쓴소리를 토했다. 실력이 한참 부족한 비전문가들이 바둑강사로 나서 ‘바둑 싹’을 말라죽게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바둑 교육을 받았는데도 실력이 늘 제자리걸음인 아이에게 어느 부모가 계속 바둑을 교육시키겠느냐”는 게 그의 쓴소리다.

그는 ‘언제까지 제자를 기를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단호히 “평생”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딸(권효진 5단)이 결혼도 했고 사위(위에량 5단)도 프로기사여서 이들에게 도장을 맡기고 슬슬 골프나 치면서 지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선뜻 맡길 수 없었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바둑 영재를 발굴하고 훌륭하게 키워서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권8단의 각오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