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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무관중 경기 ‘가난한 인천의 비애’

“‘프로’축구에 팬이 없다니….”

14일 프로스포츠 사상 첫 무관중 경기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과 포항의 맞대결은 시종일관 적막 그 자체였다. 선수들의 기합소리와 지도자들의 고함만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운동장 내에서 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굳게 닫힌 철문과 무관중 경기라는 설명만 들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경기를 치르는 관계자들도 흥을 잃었다.

14일 인천 숭의전용구장에서 홈팀 인천과 포항이 K리그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를 벌였다. 텅텅 빈 경기장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지만 암흑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천|강윤중 기자

“연습 경기도 아니고….”

황선홍 포항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김봉길 인천 감독대행은 “프로축구인데 팬이 없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지 십여 분이 흘러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팬들의 응원이 시작됐다. 하지만 경기장 안이 아닌 밖이었다.

“경기장 밖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인천관계자가 한숨 쉬었다.

14일 인천 숭의전용구장에서 홈팀 인천과 포항이 K리그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를 벌였다. 텅텅 빈 경기장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지만 암흑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천|강윤중 기자

이날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린 이유를 곱씹어보면 기가 막힌다. 지난 3월24일 인천-대전과의 K리그 경기에서 팬들간 폭력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경기가 홈팀 인천의 2-1 승리로 끝나자, 대전 팬 두 명이 경기장으로 난입해 인천의 마스코트 ‘유티’를 폭행했다. 여기에 인천팬들이 맞대응하면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프로축구연맹은 3월29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경기장 안전 관리에 미흡했다’는 이유로 1경기에 한해 인천 홈이 아닌 ‘제3지역 개최’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인천 측은 “과도한 징계”라면서 불복, 재심을 요청했다. 그러자 연맹은 ‘(인천 홈에서) 무관중 경기’로 징계를 바꿨다. 연맹은 당시 “규정에 따라 벌금 처벌만 가능하지만 해외 프로축구에서 경기장 폭력 사태에 무관중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을 벤치마킹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관중 경기 징계’는 다름아닌 홈팀 인천의 요구였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14일 인천 숭의전용구장에서 홈팀 인천과 포항이 K리그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를 벌였다. 텅텅 빈 경기장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지만 암흑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천|강윤중 기자

이날 무관중 경기를 앞두고 인천의 한 관계자는 “5월 홈경기만 아니었으면 한다는 뜻으로 재심을 요청했는데 무관중 경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천의 주장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조동암 인천 대표이사가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조 대표는 이날 “처음 받은 징계는 제3지역의 경기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하는 것이었으나 (인천이) 연맹 측에 무관중 경기를 건의했다”면서 “건의대로 징계가 (무관중 경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천 관계자가 “조 대표가 부임하신 지 오래 되지 않아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진실이 드러난 뒤였다.

그렇다면 인천은 왜 무관중 경기를 원했을까. 이날 경기장을 찾은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의 발언에서 기막한 속사정을 읽을 수 있다.

정 총재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면서 “구단도 가난하고…”라고 말했다. 인천이 돈 문제로 무관중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인천은 제3지역에서 홈경기를 개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수천만 원의 대관비용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인천 숭의전용구장에서 홈팀 인천과 포항이 K리그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를 벌였다. 텅텅 빈 경기장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지만 암흑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천|강윤중 기자

현재 인천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의 임금이 체불될 정도로 재정난을 겪었던 인천으로서는 경기장 사용료를 내야하는 ‘제3지역 경기’ 타격일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이 없는 프로축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신들이 일으킨 폭력사건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아 주변 청소에 나섰던 한 인천 팬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구단 사정으로 무관중 경기를 선택했다면 받아들여야죠. 구단의 살림살이도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 팬이 있어야 경기도 의미가 있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오늘 경기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선수들도 허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포항의 노병준은 “인천이 왜 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정을 요구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인천의 설기현도 “무관중 경기는 팬들의 관심을 떨어뜨린다”며 “유럽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가뜩이나 팬이 없는 K리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프로경기가 아닌 연습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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